호는 국권(國權). 서울 출생. 청년회관(靑年會館) 중학부를 마치고 중국 상해로 건너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교통대학(交通大學)에 입학하였다. 독립운동자금 조달을 위하여 일시 휴학하였다가 다시 복학하여 졸업하였으며,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오벌린(Oberlin)대학 체육과를 졸업하였다.
1916년 중국대학선발 축구단원으로 필리핀의 마닐라에 원정하였고, 1922년 상해유학생 고국방문축구단 단장으로 마산·대구 등지를 순회하면서 축구인으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1928년에 연희전문학교 체육주임으로 교수생활을 하면서 조선체육회 이사를 겸임하였다.
1929년봉천동북대학(奉天東北大學) 체육교수, 1931년 상해교통대학 체육교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제10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대회에 중국대표단 부단장으로 참가하였다. 광복이 되자 귀국하여 1947년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1948년 런던올림픽대회에는 한국대표단 부단장으로 참가하였다.
1949년 대한체육회 창립3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의 체육발전과 대한체육회 발전에 기여한 공적으로 표창장을 받았다. 1951년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위원으로 피선되었으며 1954년부터 1962년까지 아세아자연과학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