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낙균

  • 예술·체육
  • 인물
  • 현대
일제강점기 경성사진협회 회장, 동아일보 사진과장 등을 역임한 사진기자.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55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9년(고종 3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진석 (한국외국어대학교, 언론학)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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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경성사진협회 회장, 동아일보 사진과장 등을 역임한 사진기자.

내용

1915년 인천공립상업학교 염직과를 졸업한 후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의 정칙(正則)영어학교에서 1년, 동양대학 문화학과에서 2년간 수학하였다. 1924년에는 동경사진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27년에 졸업하였다.

같은 해 서울로 돌아와 중앙청년기독교청년회(YMCA)학교 사진과 교사가 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 관계 저서인 『사진학개설』을 출간하였다. 1929년 2월부터 경성사진사협회 제3대와 4대 회장을 맡았고, 1934년 7월 동아일보 사진과장으로 입사하였다.

그가 동아일보 사진과장으로 재임하였던 기간에는 보도사진이 신문 지면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고 사진 중심의 화보가 많이 기획되던 시기였다.

동아일보에 입사한 지 2년 후인 1936년 8월 손기정(孫基禎)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 우승하자 8월 24일자 『동아일보』는 일본 아사히신문사로부터 입수한 손기정 선수의 수상 장면을 게재하면서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말소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신낙균을 포함한 관련자 여러 명이 경찰에 연행되어 만 33일간의 취조와 고문을 당한 끝에 풀려났으나 장차 언론기관에는 일체 참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했다. 그는 이로 인해 신문사를 떠났고, 1953년에는 수원 북중학교의 물리학 강사로 재직하였다.

참고문헌

  • - 『한국언론인물사화』하권(최인진, 대한언론인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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