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5.5m. 석탑은 각 부재가 어긋나 1989년에 해체하여 복원하였는데, 당시에 사리 58과와 함께 파손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발견되었다.
석탑은 현재 대원사 사리전 앞에 자리하고 있다. 곧 사리전 서쪽에는 넓직한 탑전(塔殿)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 석탑이 위치하였다. 바로 앞에는 배례석(拜禮石)이 있으며, 옆면에 ‘석가불사리탑건륭갑진중건(釋迦佛舍利塔乾隆甲辰重建)’이라고 새긴 글자가 있어, 석탑이 1784년(정조 8)에 다시 건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석탑은 2층 받침돌 위에 8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리고 머리장식인 상륜(相輪)을 놓은 모습이다. 다만 이 석탑을 9층 석탑이나 10층 석탑으로도 부르는데, 그것은 2층 받침돌을 단층 받침돌로 보거나 받침돌을 합하여 층수를 세었기 때문이지만 8층이라고 해야 한다.
아래층 받침돌의 면석에는 모서리 기둥과 1개의 가운데 기둥이 새겨져 있다. 덮개돌은 두툼한 편으로, 평평한 윗면에는 둥글고 각진 2단의 굄이 마련되어 있다. 윗층 받침돌은 이 석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각 면에 1구씩 합장한 공양좌상(供養坐像)이 조각되어 있고, 네 귀퉁이에는 모서리 기둥 대신에 원통에 새겨진 인물입상(人物立像)이 1구씩 배치되어 있다. 덮개돌은 두툼한 1장의 널돌로 이루어졌는데, 밑면에는 얕은 부연(副椽)을 새겼으며, 윗면에는 둥글고 각진 2단의 굄이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하여 올려 놓았다. 각 층의 몸돌에는 좌우에 모서리 기둥이 가지런히 새겨져 있다. 각 층의 지붕돌은 밑면에 2단의 받침이 있고, 윗면에는 윗층의 몸돌을 받칠 수 있는 각진 1단의 굄이 있다. 다만 받침과 굄이 낮아서 지붕돌의 전각(轉角)이 두터워 보인다. 상륜부에는 복발(覆鉢)과 보륜(寶輪)으로 꾸민 돌을 놓고서 굵직한 찰주(擦柱)를 가운데에 꽂아 두었는데, 찰주 중간에는 원뿔 모습의 보주(寶柱) 하나가 장식되어 있다.
석탑의 건립 시기는 각 부분의 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조선 전기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때 무너졌다고 전하기도 한다. 이 석탑은 각 부재가 완전하게 남아 있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석탑으로, 이 시대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