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악 ()

목차
국악
개념
삼국시대 일본 궁중에서 신라의 음악인들이 연주한 음악. 시라기가쿠.
이칭
이칭
시라기가쿠
목차
정의
삼국시대 일본 궁중에서 신라의 음악인들이 연주한 음악. 시라기가쿠.
내용

나라(奈良)시대 일본에 소개된 신라악은 ‘시라기가쿠’라고 불리었으며, ‘구다라가쿠’라고 불린 백제악(百濟樂) 및 ‘고마가쿠’라고 불린 고려악(高麗樂)과 함께 삼국악(三國樂) 또는 삼한악(三韓樂)이라고 알려졌다.

신라악을 포함한 삼국악은 ‘도가쿠’라고 불린 당악(唐樂)과 더불어 일본의 아악(雅樂)을 형성하는 데 기본 역할을 하였으며, 현재까지 일본전통음악인 아악에 전승되고 있다. 『일본서기』 권13에 의하면 신라음악이 처음으로 일본에 소개된 때는 453년(允恭天皇 42)인데, 그때에 신라 악인 80명이 고취(鼓吹)같은 의식음악을 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신라음악은 561년(欽明天皇 22) 신라 사신이 머무르던 신라관(新羅館)에서 연주되었을 것으로 추정된 바 있다. 그러나 신라악이란 명칭이 처음으로 나타난 때는 684년(天武天皇 12)이라고 『일본서기』 권29에 기록되어 있다.

『대보율령(大寶律令)』의 직원령(職員令)에 의하면, 702년(大寶 2) 신라악은 신라 악사(樂師) 4명과 신라 악생(樂生) 20명에 의해서 일본 왕립 음악기관인 아악료(雅樂寮)에서 연주되었으나, 731년(天平 3) 신라 악생 20명은 4명으로 감원되었다.

809년(大同 4)에 활약했던 신라악사 2명은 금(琴)과 무(舞)를 가르쳤다고 『일본후기(日本後紀)』 권19에 기록되었다. 731년 이후 신라 악생은 4명에서 20명으로 증원되었다가 848년(嘉祥元年) 4명으로 다시 감원되는 변천과정을 거쳤다.

신라 악사와 신라 악생들이 연주했던 신라악은 인묘천황(仁明天皇, 833∼849) 때 아악료의 개편에 따라서 백제악과 함께 고려악에 통합되었다. 통합 이전의 신라악은 백제악의 경우처럼 신라 본국에서 연주되었던 연향악(宴享樂)의 일종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가얏고 반주에 불린 노래와 춤을 포함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한국음악논총(韓國音樂論叢)』(이혜구, 수문당, 1976)
『일본음악(日本音樂)の역사(歷史)』(吉川英史, 대판창원사(大阪創元社),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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