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신라기(新羅伎)라고도 한다. 신라악은 수나라의 개황(開皇, 589∼600)초에 설치되었던 칠부악(七部樂)에 들지는 못했으나, 백제기(百濟伎)·부남기(扶南伎)·강국기(康國伎)·돌궐기(突厥伎)·왜기(倭伎)와 함께 잡기(雜伎)의 하나로 수나라 궁중에서 연주되었다.
신라 진평왕이 당나라 태종에게 631년(貞觀 5) 여악(女樂) 2명을 보냈다는 기록으로 보아서, 신라악은 당나라 초기에 잡기의 하나로 존속되었던 것 같다. 잡기의 하나였던 신라악은 백제악의 경우처럼 음악과 무용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되며, 631년에 보낸 신라의 여악도 신라춤을 추기 위해서 파견되었으리라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