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전국 유명 사찰의 탱화를 그린 승려.
내용
이에 혼자 방에 들어가서 1년 동안 남몰래 여러 부처님의 불화(佛畫)를 연구하는 데 전념하였다. 이를 이상히 여긴 화승(畫僧)이 찾아가보니 그리는 법이 매우 우수하여 정식으로 가르침을 받은 이들을 능가하고 있었다.
천부적인 재질이 있음을 알고 그때부터 정식으로 가르쳤는데, 묘리(妙理)를 빨리 터득하였고 기술이 빼어나서 큰 진보를 보았다. 얼마 뒤에는 스승도 그의 솜씨를 따를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전라북도 무주의 적상산성에 있던 승려가 괘불(掛佛)을 그려 달라고 청하였으므로, 스승의 명을 따라 괘불을 그리기 위하여 적상산성으로 갔다. 적상산 입구에 이르렀을 때 큰 소나기가 오다가 그치고, 금빛의 손이 나타나서 그의 손을 어루만져주었다고 한다.
이때 그린 괘불탱화가 첫 작품이었지만 명작으로 평가받았다. 그뒤 전국의 이름 있는 사찰에 많은 탱화들을 남겼으며, 조선시대 화원승 가운데 최고봉으로 손꼽히고 있다.
참고문헌
-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 신문관,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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