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병조참판, 우승지, 양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문정(文貞)
  • 성여(聖如)
  • 해장(海藏)
인물/전통 인물
  • 본관평산(平山)
  • 사망 연도1865년(고종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참판|우승지|양주목사
  • 출생 연도1805년(순조 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순만 (제주농민교육원, 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양산 통도사 소장 신석우 영정 미디어 정보

양산 통도사 소장 신석우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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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참판, 우승지, 양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성여(聖如), 호는 해장(海藏). 신소(申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광손(申光遜)이고, 아버지는 교리 신재업(申在業)이고, 어머니는 좌참찬 김이탁(金履度)의 딸이다. 판서 신석희(申錫禧)의 형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28년(순조 28) 진사가 되고 1834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가주서(假注書)·예문관검열·사간원정언을 거쳐 1838년(헌종 4) 용강현령(龍岡縣令)을 지냈으며 그 뒤 부교리·병조참판·우승지·양주목사·대사성·이조참의·승지·이조참판 등을 거쳐 1855년(철종 6) 경상도관찰사를 지냈다.

1857년 대사헌이 되고 이듬해 한성부판윤을 거쳐 1859년 형조판서에 이어 예조판서가 되었다. 1860년 동지정사(冬至正使)로 청나라를 다녀왔다.

이 때 청나라에서는 영국·프랑스연합군에게 광동(廣東)을 점령당하고 북경(北京)이 함락당한 때였으므로 귀국하여 이러한 사정을 보고하니 민심이 크게 동요하였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1863년에는 「해주기적비(海州紀蹟碑)」의 서사관(書寫官)으로 특별 가자(加資)되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헌종실록(憲宗實錄)』

  • - 『철종실록(哲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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