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2년(공민왕 1) 원나라에 있을 때 왕을 수종(隨從)한 공으로 대호군(大護軍)에 임명되고 연저수종1등공신(燕邸隨從一等功臣)에 올랐다. 그 뒤 상호군(上護軍)을 거쳐 영원부원군(寧原府院君)에 봉해졌다. 1361년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으로 개경(開京)이 점령되자 왕을 모시고 복주(福州: 지금의 安東)까지 호종(扈從)한 공으로 1363년 신축호종1등공신(辛丑扈從一等功臣)에 서훈(敍勳)되었다.
1365년(공민왕 14) 노국공주(魯國公主)가 죽자 상을 마칠 때까지 능을 지킨 공로로 충근절의익위공신(忠勤節義翊衛功臣) 호를 받았고, 밀직사 상의 회의도감사(密直使商議會議都監事)에 임명되었다가 2년 뒤 다시 도첨의평리 상의 회의도감사(都僉議評理商議會議都監事)에 올랐다. 평소 왕에 대한 충절로 고위관직에 제수되고 왕으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아 조정대신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시호는 충희(忠禧)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