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산(靈山). 할아버지는 첨의찬성(僉議贊成) 신혁(辛革)이고 아버지는 합문지후(閤門祗候) 신원경(辛原慶)이며, 부인은 보마배행수별좌(寶馬陪行首別坐) 안종기(安宗基)의 딸이다.
충목왕(忠穆王) 때 형 신예(辛裔)가 취성부원군(鷲成府院君)이 되어 그의 매서(妹壻)인 폐행권신(嬖幸權臣) 고용보(高龍普)와 더불어 정권을 농단하였는데, 이 때 대호군(大護軍)의 직함을 가지고 권력을 남용하였다.
1356년(공민왕 5) 요동팔참(遼東八站)의 정벌전에 서북면이마사(西北面兵馬使) 강중경(姜仲卿)의 휘하에서 사윤(司尹)의 관직을 띠고 그 부사(副使)로 참전하였다. 이 때 원나라의 사신 직성사인(直省舍人)이 기철(奇轍)이 이미 살해된 줄 모르고, 기철에게 태사도(太司徒)를 삼는 선명(宣命)과 도장을 가지고 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빼앗고 옥에 가두었다.
1359년 홍건적(紅巾賊)의 위평장(僞平章)과 모거경(毛居敬)이 4만의 병력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침입하였을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로서 홍건적을 격퇴한 공으로 1363년 기해격주홍적1등공신(己亥擊走紅賊一等功臣)에 녹훈되었다. 이후 신돈(辛旽) 일당에 가담하여 권세를 부리다가 신돈이 숙청되자, 함께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