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관은 평안도 중화의 생양관(生陽館)에서 의주의 의순관(義順館)에 이르는 대동도(大同道) 소속의 역참으로 중국사행로에 있어 중요한 경유지의 하나였다.
고려시대에는 신안참이라 했으며, 조선 초기에 신안관으로 개칭하고, 『경국대전』에는 신안역으로 표기되었다. 신안관의 관리는 고려시대에 흥화도(興化道)에 소속되었으며 초기에는 평안도 신안관로찰방의 감독 아래 있었으나, 후기에는 대동도찰방으로 개편되었다.
신안관에는 사신접대를 목적으로 전패실(殿牌室)·칙서방(勅書房)·대청(大廳)·동헌(東軒)·서헌(西軒), 포진고(鋪陳庫)·사후청(伺候廳)·공수방(供需房)·목기고(木器庫) 등의 부속건물이 세워졌으나 1817년(순조 17)에 불타버렸다.
그 뒤 1819년에 목사 유상재(柳尙載)가 중수하여 서별관(西別館)·영빈당·영춘당 등의 건물이 다시 세워졌다. 대동도의 속역(屬驛)은 중화(中和)의 생양관(生陽館)-순안(順安)의 안정관(安定館)-숙천의 숙녕관(肅寧館)–주의 안흥관(安興館–산(嘉山)의가평관(嘉平館)-정주(定州)의 신안관-곽산(郭山)의 운흥관(雲興館)-선천(宣川)의 임반관(林畔館)-용천(龍川)의 양책관(良策館)-개천(价川)의 소곶관(所串館)-의주(義州)의 의순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