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독립운동가였던 신형호의 고택으로 현재는 안채만이 남아 있는데, 종도리 장여 아래에 있는 상량문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말기인 고종18년(1881)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채의 평면은 정면 7칸, 측면 2칸에 우측으로 다시 꺾이어서 정면 3칸, 측면 2칸이 붙어 전체적으로 ㄱ자형 평면을 이룬 동남향 집이다.
안채는 2칸 통칸으로 된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우측에는 2칸의 안방을 들였는데 이 방에는 사분합 미닫이문을 달았고 이 방 뒷편에 다시 1칸의 좁은 툇마루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방에서 앞으로 꺾이어서 3칸되는 넓은 부엌을 들였다. 또 대청의 좌측으로는 앞에 툇마루를 둔 1칸의 건넌방을 들였는데 아래는 온돌아궁이의 함실을 설치하고 위는 다락으로 꾸몄고 이어서 다시 1칸의 좁은 툇마루를 붙여 설치하였다.
구조는 자연석으로 쌓은 자연석 기단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는데 기둥머리에는 간결한 양봉을 건물의 내 · 외 방향으로 끼워 장식하였다. 지붕틀은 기둥위에 대들보와 종보를 걸고 있는 5량가구이며, 종보 위 중앙부분에 제형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고 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안채의 공간 구성에서 좌 · 우 끝부분에 중앙 부분에 있는 넓은 대청공간과 구별되는 또 다른 독립된 좁은 툇마루를 만들어 이를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꾸민 특징을 볼 수 있는 주택으로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