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우승지,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집의(執義)·동부승지·우승지 등을 거쳐, 1650년(효종 1)에는 도승지가 되었다. 이때 동지춘추관사를 겸하여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대사간을 거쳐 1652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7년 대사간으로 국왕을 능멸하였다 하여 강계에 유배되었다가 천안으로 옮겨졌다.
그 뒤 유배에서 풀려나 1661년(현종 2)에 형조참판이 되었고, 이어 호조·예조의 참판을 역임하였다. 또한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따라 심양(瀋陽)에 다녀온 적이 있다. 글씨에 능하였다.
저서로 『죽당집』이 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여암유고(旅菴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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