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우승지,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군택(君澤)
  • 이옹(泥翁), 죽당(竹堂)
인물/전통 인물
  • 본관고령(高靈)
  • 사망 연도1665년(현종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동부승지|우승지|형조참판
  • 출생 연도1610년(광해군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해순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신유 글씨 미디어 정보

신유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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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우승지,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군택(君澤), 호는 죽당(竹堂)·이옹(泥翁). 첨지중추부사 신말주(申末舟)의 7대손이며, 신언식(申彦湜)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신염(申淰)이고, 아버지는 신기한(申起漢)이며, 어머니는 김영국(金英國)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6년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지평(司憲府持平)·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校理)·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642년에 이조좌랑이 되고, 이듬해 통신사(通信使)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그 뒤 집의(執義)·동부승지·우승지 등을 거쳐, 1650년(효종 1)에는 도승지가 되었다. 이때 동지춘추관사를 겸하여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대사간을 거쳐 1652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7년 대사간으로 국왕을 능멸하였다 하여 강계에 유배되었다가 천안으로 옮겨졌다.

그 뒤 유배에서 풀려나 1661년(현종 2)에 형조참판이 되었고, 이어 호조·예조의 참판을 역임하였다. 또한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따라 심양(瀋陽)에 다녀온 적이 있다. 글씨에 능하였다.

저서로 『죽당집』이 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여암유고(旅菴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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