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회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병조판서, 예조판서,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여근(汝根)
인물/전통 인물
  • 본관평산(平山)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판서|예조판서|황해도관찰사
  • 출생 연도1706년(숙종 3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범 (전 인간문화재,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신회 초상 미디어 정보

신회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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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판서, 예조판서,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여근(汝根). 사간 신명규(申命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단(申鍴)이고, 아버지는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신사철(申思喆)이며, 어머니는 이규일(李揆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41년(영조 17) 진사가 되고, 1743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해 수찬(修撰)으로 등용되고 1746년 교리가 되었다. 1750년 승지가 되었으나, 그 해 사마시의 합격자 발표에 관한 절차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신회의 주장이 공정성을 잃었다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아 종성에 유배되었다.

그 뒤 유배가 풀려 돌아와서 근신하던 중 1755년 병조판서에 복직되었다. 이듬해 예조판서가 되었다. 1762년 영조가 사도세자(思悼世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일 때 이에 적극 동조하였다. 그 뒤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이조판서로 복귀했다. 1772년 좌의정이 되고 이어서 영의정이 되었다. 그 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776년 영조가 죽고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즉위하자, 왕의 죽음을 알리고 시호를 청하며 왕위계승을 고하는 고부 겸 청시승습사(告訃兼請諡承襲使)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일찍이 사도세자를 죽이는 일에 동조하였다 하여 정조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되었다. 그 뒤 1784년(정조 8) 관작이 회복되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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