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판서, 예조판서,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유배가 풀려 돌아와서 근신하던 중 1755년 병조판서에 복직되었다. 이듬해 예조판서가 되었다. 1762년 영조가 사도세자(思悼世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일 때 이에 적극 동조하였다. 그 뒤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이조판서로 복귀했다. 1772년 좌의정이 되고 이어서 영의정이 되었다. 그 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776년 영조가 죽고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즉위하자, 왕의 죽음을 알리고 시호를 청하며 왕위계승을 고하는 고부 겸 청시승습사(告訃兼請諡承襲使)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일찍이 사도세자를 죽이는 일에 동조하였다 하여 정조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되었다. 그 뒤 1784년(정조 8) 관작이 회복되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