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信孝)는 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 신라 때의 거사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탑상(塔像)」편 ‘대산월정사오류성중(臺山月精寺五類聖衆)’조에 그에 관한 내용이 전하는데 다음과 같다. 신효는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고기를 구하려고 산과 들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길에서 학 다섯 마리를 만나 활을 쏘았더니 그중 한 마리가 날개깃 하나를 떨어뜨리고 모두 날아가 버렸다. 신효가 그 깃으로 눈을 가리고 사람을 보니 모두 짐승으로 보였다. 이상하게 여긴 그는 고기를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는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어머니를 대접했다.
이후 신효는 자신이 살던 집을 절로 만들어 효가원(孝家院)이라 하였다. 그는 길을 떠나 전국을 여행하였다. 경주 경계 하솔(河率)에 이르러 학의 깃으로 사람들을 보니 모두 사람의 형상으로 보였다. 그는 늙은 아낙네로 변신한 관음보살의 가르침을 받고 자장법사가 집을 지어 머물렀던 곳으로 들어가 살았다. 어느 날 다섯 명의 승려가 신효를 찾아와 말하기를 “그대가 가지고 온 가사(袈裟) 한 폭은 지금 어디 있는가?”라고 하였다. 신효가 영문을 몰라 하자 승려들이 또한 말하였다. “그대가 눈을 가리고 사람을 본 그 학의 깃이 바로 가사이다.” 신효가 학의 깃을 승려들에게 건내니 가사의 찢어진 곳에 대었는데 꼭 맞았다. 학의 깃털이 아니고 베였던 것이다. 신효는 작별한 후에야 비로소 그들이 다섯 성중의 화신임을 알았다.
신효가 살던 곳은 오늘날의 오대산 월정사(月精寺)를 일컫는다. 이 월정사에는 신효 이후 범일(梵日)의 제자인 신의(信義)가 와서 암자를 세우고 살았으며 뒤에 또 수다사(水多寺)의 장로 유연(有緣)이 살았는데 이로부터 점차 큰 절을 이루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