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눌 ()

목차
불교
인물
남북국시대 중국의 복청사에서 주석을 한 승려.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미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남북국시대 중국의 복청사에서 주석을 한 승려.
내용

현눌(玄訥)은 신라 말인 9세기 후반에 중국으로 건너가 활동한 승려이다. 그는 복건성 설봉산의 의존(義存) 선사에게 사사(師事)하였다. 후에 천주자사(泉州刺史) 왕연빈(王延彬)이 복청사를 창건하여 현눌을 맞아들였는데, 이를 계기로 설봉의 설법을 전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천주에서 30여 년 동안 활동한 현눌은 대략 10세기 전반기에 열반하였다. 『조당집(祖堂集)』과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는 현눌과 왕연빈이 했던 문답에 관한 일화가 전하는데, 왕연빈의 여러 질문에 대해 중요한 것은 현답을 해주고 하찮은 것에 대해서는 크게 꾸짖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십국춘추(十國春秋)』와 『천주부지(泉州府誌)』에도 현눌의 행적과 관련된 내용이 전한다.

현눌이 주석하였던 복청사는 현재 중국 천주시(泉州市) 풍택구(豐澤區) 북봉진(北峰鎭) 석갱촌(石坑村) 남쪽에 위치해 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절인데 문을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중앙에 육각정이 있고 그 안에는 상개법사(常凱法師)의 영탑이 세워져 있다. 상개법사는 근대에 복청사를 중건한 인물이다. 영탑 뒤편에는 장경각이 있다. 법당의 중앙에는 현눌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절의 좌측 용수 아래에 있는 1989년에 중수한 비석을 참고하면, 원래 절의 규모는 당우가 10여 채나 되고 큰 규모의 방생지(放生池)가 있었던 곳이라 한다.

참고문헌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조당집(祖堂集)』
『천주부지(泉州府誌)』
「고려와 중국 남동해안지역과의 해상교류를 통해 본 11세기 황해 해로 변경」(차광호, 『문명교류연구』2, 2011)
「중국 복건지역 한국관련 불적 조사기」(조영록, 『신라문화』15, 1998)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