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여러 개의 나무를 조합하여 아미타여래와 권속(眷屬: 따르는 무리)을 조각한 아미타여래설법상이다. 원래 실상사 약수암(藥水庵) 보광명전(普光明殿)에 봉안되어 있었으며, 현재는 금산사 성보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 불상은 하부의 명문을 통하여 정조 6년인 1782년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약수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불화를 조각과 같이 입체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일반적으로 ‘목각불탱(木刻佛幀)’이라고도 한다. 불화가 비단과 삼베 등 천이나 종이에 그려진다면, 이것은 여러 개의 나무를 잇대어 만든 목판을 입체적으로 조각한 것이다.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아래쪽 중앙부에 아미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팔대보살상(八大菩薩像)과 2구의 제자상(弟子像)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존상은 아래 중간 부분에서 솟아나온 연꽃 줄기로부터 파생된 연꽃 위에 앉아 있거나 서 있다. 또한 이들 보살상과 제자상 사이에는 작은 연꽃 속에서 지금 막 태어나고 있는 화생(化生: 다시 태어나는 것) 장면이 여러 개 있는데,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에 9개의 품차(品次: 단계)에 따라 태어난다는 구품왕생(九品往生)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아미타여래를 팔대보살들이 협시하는 도상적인 근거는 불공(不空)이 번역한 『팔대보살만다라경(八大菩薩曼茶羅經)』이다. 경전에 언급된 보살상은 관음보살(觀音菩薩), 미륵보살(彌勒菩薩),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문수보살(文殊菩薩), 제개장보살(除蓋障菩薩) 등이다. 이들 보살 중에서 도상적인 특징이 분명한 존상은 아미타여래상 좌측 첫 번째에 있는 보관(寶冠: 보배로운 모자)에 화불(化佛: 작은 불상)이 있고, 오른손으로 정병(淨甁: 깨끗한 물이 담긴 병)을 잡고 있는 관음보살과 윗줄 제일 우측에 있는 출가 승려의 머리를 한 지장보살이다. 나머지 존상들은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어떤 보살상인지 알 수가 없다. 2구의 제자상은 불상 위쪽 좌측에 있는 노인 모습을 한 가섭상(迦葉像)과 우측에 있는 젊은 출가 승려의 모습을 지닌 아난상(阿難像)이다.
아미타여래상은 아담한 크기에 조용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통견(通肩: 옷이 양쪽 어깨를 덮는 것) 형식으로 법의를 착용하였으며, 내의(內衣: 속옷)와 군의(裙衣: 치마)가 모두 표현되어 있다. 법의는 연화대좌의 꽃잎 사이로 물결치듯이 흘러내렸는데, 18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표현법의 하나이다. 보살상들은 모두 장방형의 얼굴과 많이 노출된 가슴을 지니고 있지만, 손 자세와 장엄 표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부 보살상의 장엄에서도 조선 후기의 특징이 나타나는데, 가섭상과 아난상 바로 옆에 있는 2존의 보살상 무릎 아래를 두르고 있는 장식띠가 그것이다.
17세기 이후에 새롭게 출현한 불상 조각의 한 유형으로서, 여러 개의 나무를 이어 만든 목판에다 극락정토에서 아미타여래의 설법과 그것을 경청하는 팔대보살과 제자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조선 후기에 유행한 새로운 불상 조각의 한 유형이자, 1782년이라는 구체적인 조성 연대를 가지고 있어서 불상 연구의 중요한 기준작이 된다. 또한 고려시대 14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아미타불과 팔대보살의 도상이 조선 후기에 어떤 식으로 해석되어 표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