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대학 ()

제도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1973년부터 문교부(현 교육부) 주도 아래 교육과 연구과정에서의 개혁을 시도한 시범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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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1973년부터 문교부(현 교육부) 주도 아래 교육과 연구과정에서의 개혁을 시도한 시범대학.
내용

1960년대 초 대학 정비를 비롯한 일련의 대학개혁이 시행착오로 끝난 이후 1970년대에 이르러 보다 점진적·자율적 방법에 의한 대학개혁이 추구되었다. 이에 따라 실험대학은 수많은 지역 세미나와 1972년의 고등교육 개혁에 관한 국제 세미나를 거쳐 채택된 대학개혁의 접근방법이다.

1973년 전국의 10개 대학에서 처음 발족되었으며, 실질적인 면에서 대학개혁의 선도적인 시범대학의 성격을 띠었다. 발족 당시에는, ① 졸업학점을 160학점에서 140학점으로 줄임으로써 교육과정의 개편, 교수·학습의 심화와 내실화를 기할 수 있도록 하고, ② 단계적으로 계열별 학생모집을 실시하도록 하며, ③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한하여 부전공과 복수전공제를 실시하도록 제도화하였다.

1974년에는 이른바 조기 졸업제도가 추가되었는데, 이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로 하여금 4년제 과정을 3년제로 단축 이수할 수 있도록 시험에 의한 학점 취득과 이수학점 기준을 초과하는 학점 취득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이와 같은 학사운영의 개혁을 자율성과 점진성의 원칙 아래 점차 확대 시행하도록 시도한 것이었다.

따라서 실험대학은 그와 같은 새로운 개혁을 스스로 택하고, 또한 그러한 개혁 의지와 능력 및 지도성을 갖추었다고 인정되는 대학부터 시행하여 점차 확대해 나간다는 구상이었다.

실험대학은 1970년대에 우리 나라 대학개혁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1960년대의 급진적·전면적 대학개혁운동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추진과정에서 약간의 경직성이 보였으며, 바람직한 성과를 거둔 측면이 있었던 반면 문제점과 부작용도 적지 않게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거의 해마다 소규모의 평가가 있었고, 1978년에는 5년 동안 시행한 결과에 대한 상당 규모의 중간 평가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학문제의 초점은 재수생의 급증에 따르는 정원정책, 학생지도에 따른 문제 및 입시제도 등의 문제로 옮아가기 시작했으며, 1980년의 7·30조처를 통하여 입시 개혁과 졸업정원제 등이 결정되고, 1982년에는 대학 정원을 대폭 증원함으로써 실험대학을 통한 점진적 개혁정책은 그 빛을 잃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실험대학이 실시 및 확충과정에서 우리 나라의 고등교육에 기여한 점은, ① 대학의 자율적 참여에 의한 대학개혁의 기풍 조성, ② 점진적 접근방법에 의한 대학개혁의 추진, ③ 대학간 정보교환의 활성화 및 대학의 폐쇄주의 감축 추세, ④ 학점 감축에 따른 대학교육과정 개편의 불가피성과 그것을 계기로 한 교육방법의 개선 추진, ⑤ 대학의 자체 평가와 자체 연구 및 전문가집단에 의한 대학평가의 시행, ⑥ 실험대학 자체에 의한 대학연구와 교육정책심의회 고등교육분과위원회 등에 의한 대학 연구, 특히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대학교육과정 연구의 활성화, ⑦ 대학운영에서의 신축성 증대 등 새로운 기풍을 일으킨 것이다.

따라서 실험대학군(實驗大學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대학의 발전지표 중 하나로서 상징적인 가치를 갖게 되었고, 마침내 전국의 보다 우수한 대학의 대부분이 실험대학의 반열에 끼게 되었다. 그러나 발족 당시부터 일부 관계자들이 지적하고 우려했던 바와 같이 취약성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실험대학의 주요 문제점으로는, ① 일부 대학이 학점 감축을 경비절감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등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는 운영을 하게 된 점, ② 교육과정 개편 등이 자율적으로 추진되기보다 일부 선진 대학을 모방하는 형태로 추진된 경우가 있었으며, 평가도 형식주의에 그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는 점, ③ 계열별 학생모집이 우리 나라 풍토에서는 학생의 소속감을 축소시키고 일부 인기학과로의 집중현상을 유발한다는 점, ④ 학생지도상의 문제점이 증대된 점, ⑤ 부전공 및 복수전공이나 조기 졸업 등이 대학의 보수성과 사회성원의 전통적 제도에 대한 집착으로 활성화되지 못하였다는 점, ⑥ 계열 입학 후의 학과 선택에서 실리 위주로 흘러 일부 학과의 존속이 문제시되었다는 점, ⑦ 교수 부담이 줄기는커녕 증대된 점 등 실질적 개혁이 수반되지 못한 사실 등이 부각되었다.

1980년 이후 많은 대학은 학과별 모집으로 환원하는 추세가 두드러졌다. 또한 모든 대학의 학점은 140학점 이상으로 규정되어, 실험대학과 비실험대학의 구분이 더욱 모호해졌다.

참고문헌

『한국고등교육연구』(김종철, 배영사, 1979)
『한국교육삼십년』(문교부,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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