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우부승지, 좌부승지,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보덕(輔德)으로서 근왕병 모집에 힘썼다. 그 공로로 왕의 신임을 받아 우부승지·좌부승지를 지내며 승정원에서 왕을 가까이에서 호종하였다. 왜군의 기세가 심해지면서 선조를 호종하여, 평양에서 다시 의주로 수행하였다. 같은 해 9월 권징(權徵)의 후임으로 경기도관찰사가 되어 서울 수복작전을 계획하였다.
도성민과 내응하며 삭녕(朔寧)에서 때를 기다리던 중, 왜군의 야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왜군은 심대의 수급(首級)을 참하여 서울 거리에 전시하였는데, 60일이 지나도 마치 산 사람의 모습과 같았다고 한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청원군(靑原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한국계행보(韓國系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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