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대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우부승지, 좌부승지,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공망(公望)
  • 서돈(西墩)
  • 이칭청원군(靑原君)
  • 시호충장(忠壯)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송(靑松)
  • 사망 연도1592년(선조 2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우부승지|좌부승지|경기도관찰사
  • 출생 연도1546년(명종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완기 (서울시립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심대 글씨 미디어 정보

심대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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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우부승지, 좌부승지,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공망(公望), 호는 서돈(西墩). 영의정 심온(沈溫)의 5대손이며, 심미(沈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심광종(沈光宗)이고, 아버지는 경력(經歷) 심의검(沈義儉)이며, 어머니는 우참찬 신광한(申光漢)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유학(幼學)으로 1572년(선조 5) 춘당대문과에 을과로 급제, 홍문관에 들어가 정자(正字)·박사·수찬(修撰)을 지내고, 1584년 지평(持平)에 이르렀다. 이 때 동서의 붕당이 생기려 하자, 언관으로서 붕당의 폐단을 논하였으며, 이어서 사인(舍人)·사간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보덕(輔德)으로서 근왕병 모집에 힘썼다. 그 공로로 왕의 신임을 받아 우부승지·좌부승지를 지내며 승정원에서 왕을 가까이에서 호종하였다. 왜군의 기세가 심해지면서 선조를 호종하여, 평양에서 다시 의주로 수행하였다. 같은 해 9월 권징(權徵)의 후임으로 경기도관찰사가 되어 서울 수복작전을 계획하였다.

도성민과 내응하며 삭녕(朔寧)에서 때를 기다리던 중, 왜군의 야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왜군은 심대의 수급(首級)을 참하여 서울 거리에 전시하였는데, 60일이 지나도 마치 산 사람의 모습과 같았다고 한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청원군(靑原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 『한국계행보(韓國系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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