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82년 임오군란 당시에 도봉소당상(都捧所堂上)으로 있었고, 군란의 책임을 지고 파면되었다. 1884년 우의정, 그뒤 좌의정을 역임하였고,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난 뒤 새롭게 조직된 수구당내각에서 영의정에 올랐다.
조선에 대한 이권을 둘러싼 청일 양국의 분쟁 사이에서 정치적 고충을 겪었고, 오토리[大鳥圭介]공사의 강압적인 내정개혁요구에 직면해서는 사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 직후 보수적 새 정부에 참여하여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고, 1897년 대한제국의 수립과 함께 새로이 의정(議政)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다가 공홍식(孔洪植) 옥중살해사건이 계기가 되어 독립협회의 탄핵을 받고, 체직처분을 받기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매천야록(梅泉野錄)』
- 『고종시대사』 1∼4(국사편찬위원회, 1970)
- 『近代日鮮關係の硏究』(田保橋潔, 朝鮮總督府中樞院,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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