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판돈녕부사,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11년 장령으로 있을 때 대다수의 의견이 한 개인의 주장을 이기지 못하여 당론이 점차 폐해가 되므로 탕평의 도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한때 소론의 탄핵으로 낙향하였다가 1725년(영조 1)에 재등용되었다. 1727년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노론이 대거 파직될 때 다시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2년 뒤에 서용되어 홍치중(洪致中)과 함께 이인좌(李麟佐) 난의 원인을 찾아 완전히 수습하고, 신임사화 때 죽은 김창집(金昌集)·이건명(李健命)·이이명(李頤命)·조태채(趙泰采)의 노론 4대신의 신원을 건의하였다. 시호는 청헌(淸獻)이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지수재집(知守齋集)』(유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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