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지

  • 역사
  • 인물
  • 삼국
삼국시대 신라의 황룡사구층목탑 건립에 참여한 백제의 건축가.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백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도학 (한양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황룡사구층목탑 건립에 참여한 백제의 건축가.

내용

이름은 ‘아비(阿非)’이며 ‘지(知)’는 이름 뒤에 붙은 미칭으로 신라의 이름표기법에 의한 것이다. 중국 당나라에 유학한 뒤 643년(선덕여왕 12) 귀국한 자장(慈藏)의 건의에 따라 신라 선덕여왕은 황룡사(皇龍寺)에 목조9층탑을 건립하기로 하였다. 이 때 신라에서는 백제에 건탑(建塔) 기술자를 요청하였는데 아비지가 발탁되었다.

「황룡사구층목탑찰주본기(皇龍寺九層木塔刹柱本記)」에 의하면 이찬(伊飡) 용춘(龍春)이 주관한 이 탑의 건립은 645년에 시작되었으며, 그가 소장(小匠) 200여 명을 거느리고 작업하여 탑을 완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황룡사구층목탑의 건립목적이 신라의 호국신앙에서 비롯된 사실과 건탑기술자가 적국인 백제인임은 서로 묘한 대응을 이루고 있다. 그 때문에 다음과 같은 설화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한다.

처음 찰주를 세우던 날 아비지는 꿈에 백제가 망하는 형상을 보고 의심하여 일손을 놓았다. 그러자 홀연히 땅이 진동하고 어둡더니 한 노승과 장사가 금당문에서 나와 그 기둥을 세우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에 아비지는 후회하면서 그 탑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 『삼국유사(三國遺事)』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