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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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아악서(雅樂署) · 전악서(典樂署) · 장악원(掌樂院)에서 의식음악과 의식무용을 전문적으로 담당하였던 음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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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아악서(雅樂署) · 전악서(典樂署) · 장악원(掌樂院)에서 의식음악과 의식무용을 전문적으로 담당하였던 음악인.
내용

악생들은 장악원의 좌방(左坊) 소속으로 있으면서 아악만을 연주하였으며, 이들은 향악이나 당악을 연주하였던 악공들과 구분되었다.

악생들은 양인(良人) 중에서 선발되었기 때문에, 공천(公賤) 중에서 뽑힌 악공보다 신분적으로 높았다. 악생들의 주요임무는 궁중의 제례의식 거행 때 등가(登歌)의 노래와 문무·무무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성종 때 악생의 수는 악사 2명, 악생 297명, 보수(補數) 100명으로 총 399명이었으나, 1636년 병자호란 이후 190명으로 감원되었다가 영조 때 195명으로 개정되었다.

성종 때의『경국대전』에 의하면, 악생 중에서 부전악(副典樂)·전율(典律)·부전율·전음(典音)·부전음·전성(典聲)·부전성과 같은 잡직을 받기도 하였는데, 이들의 잡직은 체아직(遞兒職)이었으므로 장악원에서 1년에 네 차례씩 추천서로 이조에 보고하여 사령서를 받아갔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한국음악사연구』(영남대학교출판부, 1982)
『악장등록연구(樂掌謄錄硏究)』(송방송, 영남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80)
『국역대전회통』(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60)
「장악원과 궁중악인 연구」(송방송, 『예술원논문집』, 대한민국예술원,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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