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정

  • 예술·체육
  • 제도
고려와 조선시대 성균관에 두었던 음악관계벼슬.
이칭
  • 이칭사예, 사예승(司藝丞)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송방송 (영남대학교, 음악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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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와 조선시대 성균관에 두었던 음악관계벼슬.

내용

고려에서는 뒤에 사예승(司藝丞)으로 개칭되었는데, 이들의 직분은 음악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던 일인 듯하다. 고려시대 유명했던 유신들 중에 이곤(李混)·이제현(李齊賢)·안축(安軸)이 성균악정을 지낸 바 있다.

악정은 임금이 친히 제사에 참석하는 친사(親祠)의 등가(登歌)와 헌가(軒架)에 반드시 참석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그 품계가 종4품이었고, 1인의 악정을 성균관에 두었으나, 조선 건국 당시인 1392년(태조 1) 7월 28일 문무백관을 새로 정할 때, 정4품의 악정 2인을 성균관에 두었다.

그 뒤 성종 때에는 그 명칭이 사예로 바뀌었고, 『경국대전』에 의하면 3인으로 그 인원이 늘었으나, 1865년(고종 2)의 『대전회통』에 의하면 다시 2인으로 줄어들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태조실록(太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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