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에서는 뒤에 사예승(司藝丞)으로 개칭되었는데, 이들의 직분은 음악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던 일인 듯하다. 고려시대 유명했던 유신들 중에 이곤(李混)·이제현(李齊賢)·안축(安軸)이 성균악정을 지낸 바 있다.
악정은 임금이 친히 제사에 참석하는 친사(親祠)의 등가(登歌)와 헌가(軒架)에 반드시 참석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그 품계가 종4품이었고, 1인의 악정을 성균관에 두었으나, 조선 건국 당시인 1392년(태조 1) 7월 28일 문무백관을 새로 정할 때, 정4품의 악정 2인을 성균관에 두었다.
그 뒤 성종 때에는 그 명칭이 사예로 바뀌었고, 『경국대전』에 의하면 3인으로 그 인원이 늘었으나, 1865년(고종 2)의 『대전회통』에 의하면 다시 2인으로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