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명은 왕간(王侃), 개명은 왕창(王淐). 고종(高宗)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안혜태후(安惠太后) 유씨(柳氏)이며 원종(元宗)의 아우이다. 처음에 안경후(安慶侯)에 봉해졌다가, 1253년(고종 40) 안경공(安慶公)으로 높여졌다.
1253년(고종 40)년 겨울 참지정사(參知政事) 최린(崔璘)을 데리고 몽고에 건너가 아모간(阿母侃)에게 향연을 베풀어 군대를 철수하게 한 뒤 그 이듬해 돌아왔다.1257년에는 좌복야 최영(崔永)과 함께 다시 사신으로 몽고에 다녀왔으며, 1267년(원종 8) 하정사(賀正使: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중국에 보내는 사신)로 몽고에 다시 갔다가 이듬해 귀국하였다.
1269년 6월 권신 임연(林衍)의 모의(謀議)로 왕을 별궁(別宮)에 유폐시키고 자신이 즉위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몽고는 즉시 사신 흑적(黑的)·서세웅(徐世雄) 등을 보내 진상을 조사하고 압력을 가했고 이에 안경공이 곧 폐위되고 원종이 복위하였다.
죽은 뒤 영종(英宗)으로 추존되고 아들 왕현(王儇)은 한양후(漢陽侯)에, 왕광(王侊)은 계양후(桂陽侯)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