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공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제23대 고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이칭
이칭
왕간(王侃), 왕창(王淐), 안경후(安慶侯), 영종(英宗)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개성(開城)
주요 관직
고려 고종의 2남|안경후|안경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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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후기 제23대 고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개설

초명은 왕간(王侃), 개명은 왕창(王淐). 고종(高宗)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안혜태후(安惠太后) 유씨(柳氏)이며 원종(元宗)의 아우이다. 처음에 안경후(安慶侯)에 봉해졌다가, 1253년(고종 40) 안경공(安慶公)으로 높여졌다.

생애 및 활동사항

1253년(고종 40)년 겨울 참지정사(參知政事) 최린(崔璘)을 데리고 몽고에 건너가 아모간(阿母侃)에게 향연을 베풀어 군대를 철수하게 한 뒤 그 이듬해 돌아왔다.1257년에는 좌복야 최영(崔永)과 함께 다시 사신으로 몽고에 다녀왔으며, 1267년(원종 8) 하정사(賀正使: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중국에 보내는 사신)로 몽고에 다시 갔다가 이듬해 귀국하였다.

1269년 6월 권신 임연(林衍)의 모의(謀議)로 왕을 별궁(別宮)에 유폐시키고 자신이 즉위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몽고는 즉시 사신 흑적(黑的)·서세웅(徐世雄) 등을 보내 진상을 조사하고 압력을 가했고 이에 안경공이 곧 폐위되고 원종이 복위하였다.

상훈과 추모

죽은 뒤 영종(英宗)으로 추존되고 아들 왕현(王儇)은 한양후(漢陽侯)에, 왕광(王侊)은 계양후(桂陽侯)에 봉해졌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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