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2년(우왕 8) 화척(禾尺: 도살업 등에 종사하던 무리)들이 무리를 지어 거짓으로 왜구라 칭하고 영해에 침입하여 공해(公廨: 관가의 건물)와 민호(民戶)를 불사르자 동지밀직(同知密直)으로서 판밀직(判密直) 임성미(林成味)·밀직부사(密直副使) 황보임(皇甫琳)·전밀직부사 강서(姜筮) 등과 더불어 이들을 격퇴하였다.
1385년 지문하사(知門下事)로서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가 되었고, 1388년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후 개경을 포위한 이성계(李成桂)의 군사를 맞아 최영(崔瑩)과 함께 정병(精兵)을 이끌고 남산(南山)에서 방어하였다가 패전하였다. 실권을 잡은 이성계에 의해 함경남도 안변(安邊)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참살(斬殺)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