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송시열이 만년에 벼슬을 그만둔 후 이 곳 화양동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후학들을 가르치던 서실(書室)이다.
도립공원인 화양동 계곡의 절벽 큰 암반위에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세웠는데 주위에는 노송이 울창하고 밑으로는 맑은 물이 감돌며 층암절벽이 더할 수 없는 경치이다.
정면 4칸 중 좌측 1칸에 우물마루를 깔은 대청을 만들고 이어서 2칸에는 앞에 툇마루가 달린 큰 온돌방을 드렸는데 이 방옆으로 1칸의 반침을 만들어 사용하도록 하였다.
구조는 1벌대로 쌓은 자연석 기단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다. 건축양식은 도리집 계통이나 기둥머리에 초각을 한 양봉이 결구되어 있으며, 창방위에는 소로가 3개씩 끼워져 있다.
지붕틀은 3량가구로서 대들보 위에 직접 동자주 대공을 세워 종도리와 함께 지붕의 무게를 받도록 하였고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암서재 앞에 일각문이 세워져 있고 1986년에 보수하였다. 조선의 성리학자였던 우암 송시열이 만년에 경치 좋은 이곳에 서실을 짓고 학문을 닦으면서 후학을 가르치던 유서 깊은 곳으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