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4만 1,174㎡. 김유신(金庾信)이 병사들을 모아 무술과 정신을 연마시키던 연무장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압량리 · 내리 · 선화리 두룩산유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유적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중앙부에 있는 압량읍 · 진량면의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주위에는 경산시 · 고산동(대구광역시 수성구) · 자인면 · 하양읍 등이 자리잡고 있다.
첫째, 압량리 두룩산유적은 압량리의 서북쪽 구릉지대에 높이 대를 쌓은 고대식 광장이 이에 해당한다. 이 광장의 동남쪽에는 고분의 봉토처럼 흙을 쌓아올려 대를 만든 토축고대(土築高臺)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대식 광장은 대략 원형으로 생겼으며 높이가 약 7m, 지름이 약 85m 되는데, 그 지표면은 평탄한 넓은 장소로서 광장을 형성하고 있다.
고분의 봉토처럼 생긴 토축고대는 높이가 약 10m, 지름이 약 11m로 그 정상 부분은 약간 평평한 상태이다. 이 유적은 인위적으로 흙을 쌓아올려 지형에 알맞게 만든 것으로 광장은 병사들이 무술을 익히고 심신을 닦는 연무장으로, 토축고대는 장군이 병사들을 훈련시킬 때 지휘하던 곳으로 추정된다.
둘째, 내리 두룩산유적은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향한 구릉의 정상 부분에 있는데, 압량리유적에서 하천이 흐르는 저지대를 건너 약 1.5㎞ 떨어져 있다. 유적의 형태는 압량리의 것과 같은 식으로 유적 서북쪽에는 광장이 마련되어 있고, 이 광장의 동남쪽에는 토축고대가 연결되어 있다.
광장은 일부가 경작지로 되어 있고 나머지 일부에는 민간의 묘(墓)가 들어서 있으나, 본래 자연적인 지형에 인공을 조금 가하여 축조된 평탄한 모양으로 지름이 약 80m 되는 둥근 광장을 나타내고 있다. 토축고대도 인공적으로 쌓아올린 고분의 봉토형으로 높이는 약 15m이며 동남부의 일부가 파괴되어 있다. 이 유적도 앞의 경우와 같이 장군과 병사가 군사훈련 및 정신수양을 하던 곳으로 추정된다.
셋째, 선화리 두룩산유적은 내리유적에서 약 3㎞ 떨어진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유적의 형태는 앞의 두 유적과 거의 같은 모양이며 역시 광장과 고대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적의 서남쪽에는 광장이 형성되어 있고, 고대는 광장의 남북중앙 일직선상에서 북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다. 광장은 자연적인 지형에 얼마간 인공을 가하여 축조된 것으로 높이가 약 10m, 지름이 약 80m 되는 원형의 평탄한 장소이다. 현재는 소나무가 많이 있으나 후에 심은 것이며 본래는 훈련장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추정된다.
고대는 광장에서 높이 약 2m, 지름 약 12m로 흙을 쌓아올린 토축고대인데 정상부에는 민간의 묘가 있다. 역시 이 유적도 광장은 병사들이 연무하던 곳이며, 고대는 장군이 병사들의 훈련을 지휘하던 장소로 추정된다.
두룩산이라는 말은 두리산〔圓山〕으로 두리두리한 산, 즉 둥근 산의 지형에서 온 말로 고어(古語) 두리산(豆里山=圓山)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며, 압량리 · 내리 · 선화리의 두룩산유적은 유적의 형태에서 기인한, 즉 인공적으로 광장과 고대를 흙으로 둥글게 쌓은 연무대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