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역은 찰방이 주재하였다. 조선개국 초의 좌도 충청도 정역찰방(程驛察訪) 소관역과 동화도(同化道)가 재편성된 것이다. 관할범위는 한양-양재-용인-양지(陽智)-죽산-충주 방면으로의 역로와 한양-과천-수원-진위 등에 이어지는 역로이다.
이에 속하는 역은 광주(廣州)의 낙생(樂生), 용인의 구흥(駒興)·금령(金嶺), 죽음의 좌찬(佐贊)·분행(分行)·무극(無極), 안성의 강복(康福), 양성의 가천(加川), 수원의 청호(菁好)·장족(長足)·동화(同化), 남양의 해문(海門) 등 12개 역이다.
1785년(정조 9)영화도(迎華道)로 개편되면서 새로이 과천역과 영화역(迎華驛, 水原)을 두게 되었고, 청호·장족·동화 등 3개 역은 혁파되었다. 따라서, 중심역은 양재역에서 영화역으로 바뀌게 되었고, 관할역은 11개 역이 되었다.
양재·낙생·구흥역은 대로(大路) 또는 대역(大驛)에 속하고, 금령·좌찬·분행·무극·가천·청호역 등은 중로 또는 중역에, 그리고 강복·해문·장족·동화역 등은 소로 또는 소역에 속하였다. 이 역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존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