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신계현령, 돈녕부도정, 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02년 잠시 훈국랑(訓局郎)으로 재직하다가 곧 양근군수(楊根郡守)가 되었고, 1705년 병으로 사직하였다. 1706년 다시 기용되어 전생서주부(典牲署主簿)·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강화부경·인천부사를 거쳐 1712년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이 되고, 이듬해 승지에 올랐다.
1716년 70세가 되어, 통정대부에 가자(加資)와 아울러 첨지중추부사·오위장이 되었다. 이 해에 손녀가 세자빈(世子嬪: 景宗妃 宣懿王后)으로 책봉되자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올랐고, 이어 가선대부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에 올랐다.
1721년 장례원판결사에 보임되어 사직을 청하였고, 이듬해 다시 한성부우윤에 임명, 재임 중에 죽었다. 어려서부터 관화근중(寬和謹重: 관대하면서 화합하기를 좋아하였고, 언행이 신중함)하여 원대한 기량이 있었고, 문장이 뛰어났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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