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사형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신계현령, 돈녕부도정, 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자평(子平)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함종(咸從, 지금의 평안남도 강서)
  • 사망 연도1723년(경종 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신계현령(新溪縣令)|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한성부우윤
  • 출생 연도1647년(인조 2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문기 (경산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신계현령, 돈녕부도정, 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자평(子平). 교관 어몽린(魚夢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순운판관 어한명(魚漢明)이고, 아버지는 경기도관찰사 어진익(魚震翼)이다. 어머니는 원주원씨로, 통사랑 원빈(元玭)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과거에 여러 차례 응시하였으나 급제하지 못하고, 1698년 (숙종 24) 음보(蔭補)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이 되었으며, 그 해 겨울 장릉복위설도감차 겸 별공작(莊陵復位設都監差兼別工作)으로 공을 세워 6품에 올랐다. 이듬해 의금부도사와 의영고주부를 거쳐, 1700년 신계현령(新溪縣令)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1702년 잠시 훈국랑(訓局郎)으로 재직하다가 곧 양근군수(楊根郡守)가 되었고, 1705년 병으로 사직하였다. 1706년 다시 기용되어 전생서주부(典牲署主簿)·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강화부경·인천부사를 거쳐 1712년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이 되고, 이듬해 승지에 올랐다.

1716년 70세가 되어, 통정대부에 가자(加資)와 아울러 첨지중추부사·오위장이 되었다. 이 해에 손녀가 세자빈(世子嬪: 景宗妃 宣懿王后)으로 책봉되자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올랐고, 이어 가선대부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에 올랐다.

1721년 장례원판결사에 보임되어 사직을 청하였고, 이듬해 다시 한성부우윤에 임명, 재임 중에 죽었다. 어려서부터 관화근중(寬和謹重: 관대하면서 화합하기를 좋아하였고, 언행이 신중함)하여 원대한 기량이 있었고, 문장이 뛰어났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