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좌승지, 강원도관찰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영의정 정태화(鄭太和), 좌의정 홍명하(洪命夏) 등의 대신과 간관의 변호로 정언(正言)에 기용되어, 남인 윤선도(尹善道)를 감형해 이배시키려는 왕명의 취소를 청하였다. 1672년 장령(掌令)이 되고 이어서 헌납(獻納)·사간을 거쳐, 1674년에는 보덕(輔德)이 되었다. 그러나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복제 문제로 윤휴(尹鑴) 등 남인을 공격하다 동래부사로 좌천되었다.
이 때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싸움에서 창의순절(倡義殉節)한 김정단(金廷端)·송계남(宋繼男) 등 24인의 후손 가운데, 천역(賤役)에 종사하는 자는 역을 면제시키고 정병(正兵)은 군관으로, 유학(幼學)·교생(校生)은 본도에서 재능을 시험해 기용할 것을 요청해 실시하게 하였다.
1678년(숙종 4) 동래부사로 재직할 때 왜관(倭館)을 옮기는 비용을 낭비했다 하여 파직되고, 고양에 유배되었다. 곧 풀려나 이듬해 여주목사, 1681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그 뒤 호조·병조·예조참의, 좌승지를 거쳐 1683년 강원도관찰사, 이듬해 승지를 역임하였다.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