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한글목판본. ‘언간식(諺簡式)’ 또는 ‘편지투(便紙套)’라고도 한다. 한문편지투를 간독이라 함에 대해서 한글편지투를 구별하기 위해서 ‘언(諺)’자를 덧붙인 것이다.
간행연대는 미상이나 『증보언간독』의 간기에 “丙戌十一月冶洞刊(병술십일월야동간)”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1886년을 하한선으로 볼 수 있다.
현존 원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목판 1책에 상하편으로 나누어지고 전체 30장, 1면 15행의 괘선이 그어졌으며 22㎝의 정방형이다. 사대부가의 부녀자와 일반 서민들의 편지쓰기의 교과서 역할을 하였으니 많은 이본과 필사본이 유행하였다.
상편에서는 일반 가족과 이웃 사이, 하편에서는 신부가 올리는 문안지(問安紙) 계통을 주로 다루었다. 편지마다 봉투의 서식을 앞에 싣고, 다음에 사연의 본문과 맺음말을 격식에 따라 예문을 제시하였다.
편차 내용에서, 상편 처음에는 ‘아비가 나간 아들에게ᄒᆞᄂᆞᆫ 편지(동 답서)’로부터 이어서 ‘아들이 집 ᄯᅥ나간 아비게 ᄒᆞᄂᆞᆫ 편지(동 답서), 족하의게 ᄒᆞᄂᆞᆫ 편지(동 답서), 삼촌의게ᄒᆞᄂᆞᆫ 편지(동 답서)’ 등이 있다.
하편은 처음 신부 문안 편지에, ‘아바님젼 샹ᄉᆞᆯ이(며ᄂᆞ리답), 둘좌 아바님젼 샹ᄉᆞᆯ이(딜부답)’ 등이 있는데, 이른바 문안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문안지는 근래에까지 전통 가정에서는 사돈지와 더불어 사용하고 있으며, 옛 문서의 존대(尊待) 서식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맨 끝에 고목(告目) 편지의 예문이 하나가 붙어 있다. 고목은 지체가 낮은 하인 또는 관속이 상전 양반에게 올리는 편지로서, 신부의 문안편지 형식에 준하면서도 존비(尊卑)의 표현을 극대화한 것이다.
언간독이 상업수단의 요청에 따라 방각본(坊刻本)으로 간행된 것은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이지만, 필사본으로 유포된 것은 17세기 전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훈민정음이 민중 속에 실용화된 것은 편지가 가장 으뜸이다. 이 편지가 우리 산문문학의 바탕이 되었으므로 『언간독』은 중요한 문헌적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신문학 이후에 신식 편지투가 많이 출현되었는데, 이것은 전대부터 한문편지의 간독과 한글편지의 언간독이 성행한 전통에서 연장, 발전된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