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평안도도사, 이조좌랑,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49년(효종 즉위년) 응교(應敎)를 거쳐, 집의(執義)로 있을 때 붕당조성을 비호하였다는 혐의로 파직되었다가 다시 서용되었다. 1651년(효종 2) 좌승지로 재직 중에 김자점(金自點)이 처형되고 그 일당이 제거될 때, 평소 김자점과 안면이 있다 하여 극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좌의정 한흥일(韓興一)이 과거 전랑(銓郎)으로 있을 때, 김자점 일당의 천거를 거부한 사실을 들어 구명을 호소하여 면천에 중도부처(中道付處: 유배지로 가도 도중에 정상을 참작하여 일정한 장소에 머물게 하던 죄형)되는 것으로 그쳤다. 그 뒤 등용되어 태복시정(太僕寺正)·홍문관교리를 거쳐, 승지에 오르고 한성부좌윤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기언(記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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