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풀이대로 하면 일반 공중(public)이 지니는 의견(opinion)을 뜻한다고 간단히 말할 수 있지만, 정치·경제·사회·교육 수준 등의 변수나 의견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개인이나 집단 단위로 객관화시키는 문제 등 고려해야 할 과제가 많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체로 특정한 사회의 구성원이 그 사회 전체의 이해에 관계되는 문제에 대해 갖는 공통적인 의견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론은 사회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공통된 과제로서 그 사회가 해결해야 할 정치적 또는 사회적 문제가 있을 때 발생되고 또한 형성되는 것이다.
여론의 기원은 토론(대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구성원간에 사상이나 입장의 대립이 없을 때도 집단생활에서 공통된 난제가 발생하면 해결을 모색하기 위한 최초의 노력은 토론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토론이 성장하여 여론으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회구성원이 자유롭게 또한 자주적인 처지에서 발언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의 발언이 권력이나 기타의 사회적 압력에 의해 부당하게 왜곡되거나 금압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또한, 이와 더불어 그 사회의 구성원이 그 사회의 전체적인 이익 또는 공익에 대하여 동질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여론은 아직도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여론 발전의 4단계를 보면, 첫째 단계는 여론이 지배자의 의사에 대하여 수동적·묵종적으로 되어 있는 단계이다. 둘째 단계는 지배자의 의사에 대하여 다소 비판적·공격적으로 되는 단계이다.
셋째 단계는 선거에서의 다수결원칙이 정책을 움직일 수 있는 단계이다. 그리고 넷째 단계는 언제나 국민의 의사를 측정할 수 있는 단계이다.
이러한 발전 단계 구분에서 볼 때 우리 나라의 여론은 제2의 단계 및 제3의 단계 중간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수차에 걸친 선거에 의하여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선출되어 행정부와 입법부를 구성했지만, 국가적 정책이 선거에서의 중심적인 테마가 된 일은 거의 없었으며, 따라서 정책이 다수의 국민의사에 의해 움직였다고 할 수 있는 측면은 극히 희소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여론이 정치적 지배에 대하여 얼마간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측면을 갖는 동시에, 또한 제도적인 보장을 통하여 어느 정도까지는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측면 또한 강하다.
이러한 대표적 예는 1960년 3·15부정선거를 전후한 여론을 들 수 있는데, 이 부정선거에 대한 전 국민적인 비판과 공격 및 분노는 마침내 대중적인 행동으로까지 발전했으며, 그것은 결국 자유당 정권의 종말을 고하게 하는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나라에서의 여론이 결코 지배자의 의사에 수동적으로 묵종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실로 4·19혁명이라는 역사적 경험은 한국에서의 민의가 묵종적인 단계를 벗어나는 지표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묵종적인 요소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전통적인 묵종적 태도가 적지 않게 남고 있으며, 그것이 한국의 여론으로 하여금 보다 진보된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이에 우리 나라 여론의 발전을 가로막는 구체적인 요인은 무엇이며,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거기에는 대체적으로 네 가지의 기본적 요인, 즉 사상적·문화적·정치적·경제적 요인이 있다. 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상적 요인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한국인의 사상을 지배해 온 것은 유교적 가치관이다. 유교는 조선왕조 500년의 지도이념으로, 정치적 측면에서 분석해 볼 때 그것의 핵심은 충효의 행동 기준에 내재해 있는 ‘복종의 원리’이다.
즉, 유교의 기본 원리는 곧 복종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원리는 전제적 군주정치를 효과적으로 유지해 가는 데 극히 편리한 행동양식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행동양식은 군주의 절대권에 대한 묵종과 군주에 의해 임명된 관료에 대한 복종을 뒷받침하는 것이었고, 거기에서는 이른바 관존민비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발전하였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대중의 마음속에 그 뿌리를 박고 있으며, 정치적 권력에 대한 민중의 비판이나 공격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요컨대, 대중이 스스로 주권자임을 자각하는 데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 권력의 유일한 원천은 국민 이외에는 없다는 자각을 갖지 않고는 이 관념, 민주주의의 적인 관존민비의 전근대적 관념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문화적 요인이다. 문화적 요인으로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교육이다. 자주적인 사고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한다면, 교육이 인간의 의사 또는 의견을 위한 기본적 조건이 된다는 점은 당연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초등교육이 의무교육으로 되어 있고, 또한 적지 않은 수의 중·고등학교와 대학이 설치되어 있으며, 따라서 형식적으로 본다면 교육은 상당히 보급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이 실질적으로 자주적인 인간, 주권자로서의 자각 또는 정치 권력에 대한 비판력을 지닌 인간을 양성하는 데 어떠한 정도로까지 실질적인 공헌을 하고 있는가는 적지 않게 의심스럽다.
다시 말하면, 현행의 교육이 민주주의 정치를 구현하는 데 적합한 인격적 구조를 갖는 인간, 즉 자기가 직접 체험하지 못하는 거리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나, 자기가 행한 행동(투표·서명·의사표시 등)에 대하여 도의적 책임을 가질 수 있는 능력, 권위에 대한 건전한 비판능력, 포괄적인 이해력 및 판단력을 피교육자에게 얼마나 부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정치·사회 문제에 관한 정확한 정보와 일관성 있는 지식,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관한 객관적이며 명확한 관찰력, 또 토론에 대한 적극적인 참가와 국민적·민족적인 이해를 개인적 이해에 우선시킬 수 있는 능력 등을 기르는 데 어느 정도로 기여하고 있는가가 의문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의문을 제거하고 참된 민주적인 교육을 실천하는 데 직접적이고 근본적으로 관련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정치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정치적 요인이다. 우리 나라는 조선시대에는 전제적인 군주 권력의 오랜 지배하에, 일제강점기에는 혹독한 노예적 지배하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정치 권력에 대한 공포, 그것에서 도출되는 묵종의 전통이 아직도 많이 남고 있다.
광복 후의 역사 속에서도 권력에 대한 애착이나 신뢰가 국민의 가슴속에 그 뿌리를 박기에는 권력이 너무나 독선적인 것이었고 비민주적인 것이었으며, 반국민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때때로 있었던 민의의 조작과 갖가지 부정선거에 의하여 여실히 실증되는 것이다.
권력의 독선적인 측면은 4·19혁명 이후에도 완전히 배제되지는 못하였다. 아직도 참된 뜻에서의 민의의 존중이 우리 정치생활의 주된 경향이 되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위정자의 독선적인 태도와 국민의 주권자로서의 자각이 결여된 것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국민의 수임자, 대리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국민의 봉사자로서의 자각을 갖게 되는 때, 그리고 국민이 주체적 의식을 확립하게 될 때 비로소 이러한 정치적 요인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러한 두 가지의 자각이 이루어지는 것과 동시에 필요한 것은 의견지도자(opinion leader)의 성장이다. 그들은 대중사회의 논쟁점을 제시하는 자로서의 기능을 갖는데, 한국에서는 이들의 질이나 양이 아직도 충분한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치 권력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위하여, 그리고 여론의 새로운 단계로의 발전을 위하여 그들은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중이 막연하게 느끼고 있는 불안이나 모순의 본질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의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비로소 ‘소리 없는 민중의 소리’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고, 일종의 사상의 생산자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며, 그들에 의해 제시된 문제점 해결은 사회의 진보에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능력과 의욕을 가진 의견지도자층은 한국의 여론을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하게 하는 촉매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넷째, 경제적 요인이다. 대중이 정치·사회 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토론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 중의 하나는 경제적 안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빈곤이 민주정치의 기반을 위협하는 것임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건전한 여론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대중적 빈곤 그 자체가 사회·정치 문제가 되는 것이지만, 그것의 해결은 여론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열쇠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의식주의 기본적인 물질적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건전한 사고나 판단을 할 수 없다. 우리 나라의 경우, 선거 때마다 횡행하는 매표 행위는 그 근본 원인을 경제적 빈곤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경제적 빈곤이 유지되는 한 주권자로서의 의식이나 자기 행위에 대한 도의적 책임 또는 국가적·민족적 이해를 개인적인 그것에 우선시킨다는 민주적 국민의 정신자세는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대중적인 빈곤이 여론의 새로운 단계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요한 원인의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에서 살펴본 여론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네 가지 요인 외에, 현대 한국사회에서 또 한 가지 여론 형성·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언론’이다.
언론은 오늘날과 같은 복합적인 현대사회에서 소집단의 대화나 토론을 통한 여론 형성기능을 대체하여 새로운 여론 형성의 주체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에 의한 여론 형성능력은 긍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이에 반하는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지니는 양면성을 띠어 그 영향력 및 파급효과가 상당히 중요시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쟁점을 객관적으로 기술, 설명해 줌으로써 대중이 미래를 예측하여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집약적인 힘으로 승화시켜 국민 모두가 사회·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일익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반면에 부정적인 측면은 상황 기술과 설명이 객관성을 결여하고 다수의 이익보다는 소수의 이익에 편승하여 왜곡과 편견으로 대중을 오도할 잠재적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언론이 상업성이나 정치성에 따라 일부 층의 특정 목적을 위해 상황을 단순화해서 일반화시키거나, 선입견에 의한 고정관념적 제시를 통해 편향성을 띠어 다수의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한국의 언론은 타당성과 신뢰성을 기초로 한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확한 민의 파악과 수렴에 최선을 다하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대중으로 하여금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일관성 있는 지식 및 그러한 상황에 대한 식별력 있고 객관적이며 명확한 통찰력을 갖도록 그 본연의 기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로 말하면 속도의 완급은 있겠지만 대체로 각종 통신기술과 정보처리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정보화시대로 이행되어 여론의 의미와 성격도 차츰 달라지고 있다.
즉,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획기적인 발달로 인해 정보의 양과 이용 가능성이 확대되면서 정보의 경제성이 강조되고 있는 만큼 여론 역시 무형의 자원인 정보가 지니는 질적 가치에 따라 그 형성과정과 내용 및 사회체계에 미치는 영향이 변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여론의 생성조건이 달라지고 대중매체(mass media)의 역할이 변함으로써 현대사회의 여론은 대중적 여건을 만들어 가는 방법이나 과정으로서의 상징성을 갖게 된다. 이 상징성은 효율성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시민들의 의견을 조정할 수 있고 다수의 의견을 정당한 것으로 믿게 할 수도 있다.
긍정적으로 보면 정보사회에 적합한 정치체계는 대중의 정치적 희망과 욕구를 최대한 받아들이는 참여민주주의로 전환될 것이고, 여론 역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춘 활동하는 시민들에 의해 주도될 가능성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이 때의 활동하는 시민은 정보사회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갖추고 각자의 개인세계에 매몰되어 있는 다수의 일반 시민들보다 사람과 사회에 대해 전체적인 조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의 지도력은 사회적 비밀이 적어지고 개방성이 커지며 이데올로기 선호보다 기술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사회적 상황에 대한 학습에 의해 형성되고 향상될 것이다.
부정적인 견해는 정보사회에서의 여론은 사람들 사이에 자신의 능력에 따라 차지할 수 있는 정보량의 격차가 커지고 각종 미디어의 비인간화가 개인을 기술의 지배에 복종하는 자발적인 신민(臣民)으로 만들어 감으로 모든 개인들을 기술 발전에 종속시키는 암울한 미래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결국 한국 사회의 여론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기술과 미디어에 종속당하는 것을 거부하고 더욱 능동적인 시민이 되어 넘치는 정보 가운데서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지고 더 필요한 정보를 얼마만큼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간이 개발한 기술이나 인간이 생산한 고도의 정보에 대한 더욱 합리적인 이용이 새로운 정보사회에서 전개될 여론의 향방이라고 하겠다. 여론은 대중 예술과 대중 문화의 유사성과 획일성으로부터 우리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
또한, 우리 시민들은 우리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맞는 여론을 조성하고 전파하기 위해 각자가 모두 여론의 주인이라는 정서적 공감대를 구축하고 그 토대 위에서 정보와 기술에 대해 더욱 신중하고 합목적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 여론과 시민 사이에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