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문서(文瑞), 호는 송오(松塢). 금릉 출생. 아버지는 여종호(呂從護)이며, 어머니는 인천이씨(仁川李氏)로 참봉 이승원(李承元)의 딸이다. 주세붕(周世鵬)의 문인이다.
약관에 이미 경사(經史)를 박람하여 학업이 크게 진보되었으며, 1546년(명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565년 문정왕후(文定王后)가 병석에 있을 때에 보우(普雨)가 재소기복(齋素祈福)하게 하려 하자 양사(兩司)와 관학생(館學生)이 번갈아 상소를 하였는데, 그는 김우굉(金宇宏)과 함께 이 일을 주도하여 22회의 상소문을 올렸다.
1570년(선조 3) 노수신(盧守愼)의 추천으로 김천역승(金泉驛丞)이 되었으며, 1572년 별시(別試)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경호(鏡湖) 부근에 정자를 지어 소나무 몇 그루를 심은 뒤 ‘송오’라고 자호(自號)하고 후학을 교도하였다. 송계서원(松溪書院)과 경양서원(鏡陽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송오유집(松塢遺集)』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