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백평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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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지리
지명
황해도 동남부 해안 지역에 펼쳐진 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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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황해도 동남부 해안 지역에 펼쳐진 평야.
내용

예성강 서쪽에서 해주에 이르며, 연백·벽성의 두 군에 걸쳐 있다. 멸악산맥의 여맥들 사이로 흐르는 예성강·한교천(漢橋川)·나진포천(羅津浦川)·풍천(楓川)·화양천(花陽川) 등의 유역에 발달된 평야이다.

연백평야의 대부분은 재령평야(載寧平野)의 형성 과정과 같이 해안의 융기작용(隆起作用)과 하천의 충적작용(沖積作用)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연백지방은 원래 북쪽의 멸악산맥에서 뻗어 나온 산지를 반도(半島)로 하고 그 동쪽과 서쪽은 만(灣)으로 둘러싸였던 것인데 그 뒤에 해안의 연속적인 융기작용과 한강·예성강 등 여러 하천에서 밀려 내려오는 많은 토사와 거센 조수(潮水)에 의한 퇴적작용으로 넓은 연안평야를 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내륙에 남아 있는 해식동(海蝕洞)이나 해안에 발달한 해안단구를 통해 알 수 있다. 또, 융기해안은 일반적으로 해저의 경사가 완만하고 얕은 바다가 되는 것이 특징인데 이 지역 일대의 바다는 대단히 얕다.

호동면·호남면·온정면 부근에서는 바다에서 퇴적한 것으로 보이는 원력(圓礫 : 암석이 기계적으로 파쇄된 뒤 유수 등에 의한 연마작용으로 모난 곳이 둥글게 된 조약돌 또는 그 집합체)·조가비 등이 발견된다.

한편, 연백평야의 10개 면에 걸친 지역에서 토탄(土炭)이 나는데 이것은 연안주(沿岸洲) 안쪽에 있었던 석호 부근에 무성하였던 식물이 하천과 조류의 퇴적작용으로 석호와 함께 매몰되어 오랜 기간을 지나는 중에 탄화(炭化)된 것이다.

그리고 온정면에 위치한 천대산(天臺山)은 해중의 한 작은 섬이었다고도 하며, 석산면 부근 바다로부터 10여㎞ 되는 곳의 밭에서 배의 돛대가 출토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또 지명에 있어서도 호동면·호서면·해성면 등의 면(面) 이름과, 은천면의 주산동·성호리, 해월면의 율포동·아호동, 성서면의 월포동, 온정면의 동성호·서성호, 유곡면의 용소 등이 있는데, 이러한 지명들은 현재는 아니지만 과거에는 그곳이 해포(海浦) 또는 호소의 소재지였음을 밝혀주고 있다.

기후는 북쪽에 멸악산맥이 동서로 뻗어 있고, 남쪽은 바다에 면하여 있어 비교적 온화하다. 연평균기온은 10∼11℃ 내외이며 연안의 1월 평균기온은 -5.3℃, 8월 평균기온은 25.4℃에 달한다. 연강수량은 1,000∼1,100㎜ 내외이다.

연백평야와 해안의 간석지에는 일찍부터 논농사가 발달하였는데, 1930년 완공된 연해수리조합(延海水利組合)과 1934년 완공된 황해수리조합(黃海水利組合)을 비롯한 관개시설로써 ‘곡창연백’의 이름을 전국에 떨쳤다.

생산량이 많고 품질이 좋기로 이름난 연백쌀의 산지인 연백평야의 조망은 지평선에 이어지는 명실공히 황금만파(黃金萬波)의 대곡창이다.

내륙의 구릉지에서는 밭농사로 맥류(보리·밀·메밀)·두류(콩·팥·녹두·완두)·잡곡류(조·피·옥수수), 그리고 특용작물로서 면화·양잠·대마·완초·깨·소채류 등을 생산한다. 과수도 사과·배·복숭아·포도 등이 골고루 산출된다.

주요 광산물로는 토탄을 들 수 있는데 평야의 지반이 낮은 논에서는 지하 60∼90㎝ 정도 되는 곳에 두께 12∼20m 정도의 토탄층이 매장되어 있어 논농사 지대 주민들의 연료로 이용되고 있다.

평야 내의 교통은 수륙 양면이 모두 편리하다. 육상교통으로는 경기도 토성과 해주를 연결하는 토해선(土海線)이 평야를 동서로 관통하고 있어 경의선(京義線)과 쉽게 연결된다. 또 경의가도(京義街道)에 인접해 있고 지방 도로가 사방으로 통하여 육로의 교통이 편리하다.

더욱이 동쪽의 예성강 유역에는 김야포(金野浦)·금곡포(金谷浦) 등이 있는데, 그 중에도 유곡면의 금곡포는 먼 옛날부터 선박의 출입 항이었다. 이곳에는 금곡포창(金谷浦倉)이 있어 연백평야를 비롯한 황해도 일대의 전세(田稅)를 수납하여 서울로 가져갔다.

한편, 예성강 하류 강어구인 해월면의 벽란도(碧瀾渡)는 서북 방면에서 개경(開京)으로 가는 큰 통로였다. 이 밖에도 해안에는 옥산포(玉山浦)·고미포(姑美浦)·나진포(羅津浦)·백석포(白石浦)·신포(新浦)·수래포(水來浦)·거래포(去來浦)·불당포(佛堂浦) 등이 있어 해운이 발달하였다.

특히 강화도·교동도와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 연백 지방과 한 문화권을 이루는 데 주요한 몫을 하였다. 연백평야의 중심을 이루는 연안(延安)은 농산물의 집산 등이 이루어지는 상업·경제의 중심지이며 군청 소재지이다.

이곳에는 1608년에 세워진 임진왜란 3대 전첩의 하나인 연성전첩을 기념하는 연성대첩비(延城大捷碑)가 있으며, 1555년(명종 10)에 쌓고 1591년(선조 24)에 증축한 연안읍성(延安邑城)이 있다.

또 읍의 남쪽에 있던 남대지(南大池)는 옛날 우리 나라 삼대지(三大池) 중의 하나로 유명하였으나 관개되어 옥토로 변하였다. 온정면에 있는 연안온천은 북쪽의 배천온천(白川溫泉)과 함께 유명하다.

배천온천은 일찍이 세종이 요양하였다고 하여 귀족과 부유층들의 요양지가 되었고, 천질(泉質)이 매우 좋고 교통도 편리하여 각지에서 많은 요양객들이 찾아들었다.

구읍(舊邑)인 배천 북부의 치악산(雉岳山)은 경승지이며 고구려 시대의 고성(古城)인 배천산성(白川山城) 역시 임진왜란 때의 격전지이다. 이 밖에도 명승고적으로 해월면 토현리의 중흥궁지(重興宮址), 호동면 봉화리에 있는 각산(角山) 및 산록의 나루터 각산진(角山津) 등 많은 사적들이 있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택리지(擇里志)』
『황해도지』(황해도지편찬위원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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