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만4301㎡. 연산군은 실정(失政)이 극심하여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폐위되고 1506년(중종 1) 연산군으로 강봉(降封)되어 같 은해 9월 강화군 교동(喬桐)에 유배되었다.
그 해 11월 유배지에서 죽어 강화에 장사지냈다가 1512년 12월 폐비 신씨(愼氏)의 진언으로 그 이듬해 이 곳에 천장(遷葬 : 묘를 옮김)하였다.
거창군부인 신씨(居昌郡夫人愼氏)는 영의정 승선(承善)의 딸로 1488년(성종 19) 2월 세자빈으로 책봉되고, 1494년 왕비로 진봉(進封)되었다가 1506년 연산군과 함께 폐출되어 부인(夫人)으로 강봉되었으며 1537년에 죽었다.
분묘는 서편에 연산군, 동편에 부인의 묘가 쌍분(雙墳)으로 되어 있다. 묘역은 대군(大君)의 예우(禮遇)로 장례하여 곡장(曲牆 : 무덤 뒤에 둘러싼 작은 담) · 묘비(墓碑) · 혼유석(魂遊石) · 장명등(長明燈) · 향로석(香爐石) · 문인석(文人石) · 제실(祭室) 등이 갖추어져 있으나 병풍석(屛風石) · 석마(石馬) · 석양(石羊) · 사초지(莎草地 : 오래 되거나 허무러진 곳에 떼를 입히어 잘 다듬은 곳)는 설치하지 않았다.
연산군묘비 전면에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 후면에 ‘정덕 8년 2월 20일 장(正德八年二月二十日葬)’, 부인 신씨의 묘비는 전면에 ‘거창신씨지묘(居昌愼氏之墓)’, 후면의 경우 앞구절은 파손되었고 뒷구절에 ‘6월 26일 장(六月二十六日葬)’이라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