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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기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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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차나 화물차를 여러 개 연결하여 동력의 힘으로 궤도 위를 달리는 차량.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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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객차나 화물차를 여러 개 연결하여 동력의 힘으로 궤도 위를 달리는 차량. 기차.
내용

일반적으로 철길 위를 달리는 차량을 철도차량이라 한다. 이것은 동력을 가지는 차, 즉 동력차와 동력 없이 끌려다니는 차, 즉 객차와 화차로 구분한다. 동력차는 다시 객석이 없는 기관차와 객석이 있는 동차로 구분된다.

기관차에는 증기기관차·전기기관차·디젤기관차 등이 속하고, 동차는 전차·내연동차 등이 있다. 객차는 여객수송을 위한 차량으로서 보통 객차 외에 침대차·식당차·전망차 등으로 그 용도에 따라 구분하고, 화차는 화물수송용으로 뚜껑이 있는 유개차, 뚜껑이 없는 무개차·탱크차·호퍼차 등 형태와 그 용도에 따라 구분한다.

18세기 중엽 산업혁명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공산품의 수송수요를 해결하기 위하여 영국에서 발명된 것이 증기기관차이다. 1804년 영국의 트리비틱(Trevithick,R.)이 철길에 사용할 수 있는 증기기관차를 처음 제작한 뒤 1825년 스티븐슨(Stephenson,G.)이 만든 실용형 기관차(Locomotion)를 끈 것이 세계 최초의 영업용 철도(61㎞ 구간)이다.

그 뒤 1829년에 발명한 로켓 (Rocket)호는 현재 기관차의 3대 요소인 내연 다연관식 기관과 배기촉연장치 및 수평직결 기통을 지닌 기관차로서 밸브장치와 과열장치 등이 개량되어 150년간 육상수송기관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증기기관차는 증기보일러에서 증기를 발생시켜 실린더 양쪽에 교대로 공급하면, 그 속의 피스톤이 전후로 왕복운동된다. 이것이 연결봉(連結棒)과 크랭크를 거쳐 바퀴를 회전시키면 견인력이 발생되어 객차나 화차를 끌게 되는 것이다.

사용이 끝난 배출증기는 과열관(過熱管) 주위를 지나면서, 보일러에서 발생한 포화증기를 과열증기로 바꾸어 굴뚝으로 내보낸다. 동시에 보일러 안의 연료(석탄·연탄·경유 등)는 더욱 연소가 잘 되며, 이 때 생긴 가스도 굴뚝으로 빠지게 된다. 여기에 사용되는 연료 및 급수용 물은 기관차 자체가 탄수차(炭水車)를 달고 다니면서 공급한다.

기관차의 견인력은 바퀴가 레일 위를 공전(空轉)하지 않고 회전견인하는 힘인 점착(粘着) 견인력, 실린더에 비례하고 회전하는 바퀴지름에 반비례하는 실린더 견인력, 보일러에서 증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 능력인 보일러 견인력의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실제 발생하는 견인력은 이 중 가장 작은 것에 제한을 받게 된다.

실제 견인력은 차량의 주행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는 저항, 선로의 경사곡선에 의한 저항 등을 상쇄한 값이다. 실제 견인력이 각 저항의 합보다 클 때는 가속이, 작을 때는 감속이, 같을 때는 동속이 된다.

전기기관차는 직류형과 교류형이 있으며, 발전소로부터 변전소를 거쳐 가선(架線:가설해 놓은 전선)을 통하여 받은 전력을 차내에서 변전, 변류시킨 다음 모터에 공급하면 모터와 기어 등으로 연결된 바퀴가 회전하면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차내에 제어기·저항기·차단기·발전기·송풍기 등 여러 가지 보조기기를 갖추고 있다.

디젤전기기관차는 기관차에 디젤기관을 탑재하여 전력을 발생시켜 사용하는 전기구동 기관차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1889년 당시의 주미 대리대사 이하영(李夏榮)이 미국에서 정교한 철도 모형을 가져와 철도에 많은 관심을 갖게 하였다.

1894년 8월 「한일잠정합동조관(韓日暫定合同條款)」이 당시의 외무대신 김윤식(金允植)과 일본 특명전권공사 오토리(大鳥圭介) 사이에 체결되어 일본의 경부·경인 양 철도부설권을 인정하였으나, 청일전쟁 후의 일본의 경제난으로 경인철도는 1897년 3월 22일 미국인 모스(Mores,J.R.)에 의하여 기공되었다.

그 뒤 부설권은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가서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제물포 사이(33.2㎞)가 개통된 것이 최초이다. 민족항일기에 철도는 일본의 대륙진출을 위한 수송망으로, 서울에서 부산·목포·군산 등의 항구까지, 또 서울에서 신의주를 거쳐 압록강·원산을 지나 두만강까지 부설되었다. 그러므로 서울역은 그 구조가 종착역이 아니고 중간역의 형태로 되어 있다.

일본은 자기 나라 철도의 궤간은 협궤(狹軌)인 1.067m인 것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표준형인 1.435m로 비교적 대형의 기관차를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전기기관차는 광복되기 전 고산∼복계 사이에서 운행되었다. 단양∼풍기 사이를 전철화하고 일본에서 제작된 ‘데로이’형(芝浦·日立·三菱의 3개 제작사 합작제품)으로 직류 3,000V, 회생제동이 가능한 당시 최신형의 전기기관차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때 이 전기기관차는 북한으로 납치되었다. 1956년부터 미국의 원조로 디젤화가 추진되었고, 1973년 6월부터 청량리∼제천 사이의 전철화가 시작된 뒤 수도권의 전철화가 시작되었다. 1983년 4월 이후 증기기관차는 이용되지 않고 전시물로 남게 되었다.

1985년 현재 영업선 3,113㎞, 역수 593개, 기관차 1, 227대, 객차 2,168량, 화차 1만 6133량, 고정자산 약 28조 원, 직원 3만 8854명의 규모로, 연간 수송인력은 4억 9500만 명이며, 하루 1,309개 열차가 135만 5000명을 수송하여 전 수송기관의 철도분담률은 22%이다.

화물은 무연탄·시멘트·광석·유류 등 연간 5530만 톤을 수송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철도의 분담률은 40%이다. 철도는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점차 고속화하고 있다. 그러나 주행저항 및 레일과 차륜 사이의 점착력, 즉 추진력에 한계가 있으므로(약 300㎞/h)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공기저항을 없애기 위한 진공튜브열차, 차량을 레일 위에 뜨도록 하는 호버 크라프트(hover craft)·에어 쿠션 비이클(air cushion vehicle)·자기부상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의 치열한 경쟁으로 초전도자력 부상차가 연구되어 시속 500㎞를 넘는 속력으로 시운전에 성공하였으며, 새로운 교통시스템이 연구되어 자동운전궤도차는 이미 실용화되었다. 그리고 방향버튼을 누르고 대로 위에서 궤도에 오르면 자동제어되어 목적지까지 갈 수 있게 하는 방식도 연구되고 있다.

열차장비공업은 모든 형태, 모든 궤도차량을 건조, 재생하고 기관차 및 차량의 전용 부품을 생산하는 산업활동으로서 기관차 제조업, 차량 제조업, 차량부품 제조업으로 세분된다. 1899년 경인선의 개통에 따른 차량의 수요는 일본 또는 유럽에서 전량 수입되었으며, 1959년 철도청의 차량수리창인 서울공작창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객차 2량을 생산하였다.

고급객차와 우등객차 등은 계속 수입에 의존하여 왔으나 지선의 객차만이라도 국내에서 생산하기 위하여 수리창을 신조차량 전문제조창으로 개편하여 발전시켰다. 한편, 인천공작창도 조립은 하였지만 부품공업이 발달되지 못하여 주요 부품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였으며, 제조공정이 간단한 일부의 부품만 외국의 기술지도를 받아 생산하였다.

1971년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차량은 839량에 달하였으며, 차량의 생산으로 기계공업·금속공업 등 관련산업의 발전을 유발시켜 우리나라의 공업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동안 열차장비공업은 주로 정부 주도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나, 1972년 최초의 민간기업인 부곡차량공업주식회사가 설립되어 1976년 대우중공업주식회사에 인수되었다.

조선전문업체인 대한조선공사가 차량 생산체제를 갖추었으며, 1978년 현대중공업주식회사가 기관차 사업부를 독립시켜 현대차량주식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차량 양산체제를 갖추게 되어 민간주도형의 생산체제를 맞이하게 되었다.

대우중공업주식회사는 지하철용 전동차를 비롯하여 각종 철도차량을 생산할 수 있으며, 현대차량주식회사는 디젤기관차 부문에서는 국내 최초이며 GM형으로는 동양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하여 철도청에 납품하고 있다. 그리고 대한조선공사에서도 객차와 화차를 생산, 공급하고 있다.

이들 3개 철도장비제조업체의 1983년 국내시장 점유율은 대우중공업주식회사가 56.8%, 현대차량주식회사가 30.4%, 대한조선공사가 12.8%이었다. 1972년에 24만 2000달러를 수출한 것을 계기로 1983년의 철도차량 및 부품 수출실적은 8901만 8000달러로 전년에 비하여 69.5% 증가하였다. 이는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과 사우디아라비아·나이지리아 등으로 수출이 증가한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열차장비공업은 산업연관도가 높은 전기·제철·전자 등 관련산업의 발달로 비약적인 성장을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국내 산업상의 위치는 낮은 실정이다. 따라서 열차장비공업의 육성을 위하여, 첫째 국산부품과 경쟁이 되는 부품 수입은 규제하고 국산부품의 기술개발을 촉진하면서 국내부품공업을 육성하는 대책이 시급하다.

둘째 기술도입과 도입기술의 활용면이 최근에 들어와 활발한 편이나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므로 기술개발·지정육성·독자모델개발 등이 시급하다. 셋째 수출경쟁력 향상을 위한 많은 노력이 요구되며, 선진기술의 도입 및 수출창구 일원화를 통한 국내업체간 과다경쟁방지책을 강구하며, 아시아·아프리카·대양주 등의 한정된 수출시장에서 세계 철도 차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유럽과 미주 지역으로 수출시장을 다변화하여야 한다.

또한, 외국의 철도·지하철 건설 등의 개발계획에 참여하고 해당 열차장비를 수출할 수 있도록 하며, 후진국과 후발개발도상국(後發開發途上國) 등에 합작회사를 세우거나 부품조립과 완성차 제작을 위한 현지조립공장을 세우는 것도 바람직하다. 넷째 철도의 고속화는 에너지절약이라는 경제적 측면에서 필요불가결하므로 선진국 철도의 연구실적과 추세를 좀더 체계적으로 분석, 연구하여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기본방향을 설정하여 기존선과 기존차량을 개량, 보충하여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오늘의 철도』(철도청, 1986)
『업종별현황 및 전망분석: 수송기기』(은행감독원여신분석국, 1983·1984)
『한국의 산업: 산업기계』(한국산업은행조사부, 1979)
『철도차량기술지』(철도청, 1978)
「데로이형전동기관차」(김경식, 『기술인력지』5, 1981)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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