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노 ()

목차
고대사
제도
신라 초기 소금을 생산하는 노예.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신라 초기 소금을 생산하는 노예.
내용

『삼국사기(三國史記)』권45 석우로전(昔于老傳)에 “7년(253) 왜국의 사신 갈나고(葛那古)가 사관(使館)에 와 있었는데 우로가 사신과 희롱하여 말하기를 ‘조만간에 너희 왕으로 염노(鹽奴)를 삼고 왕비로 취사부를 삼겠다’고 하였다. 왜왕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 장군 우도주군(于道朱君)을 보내어 우리를 치니 대왕이 유촌(柚村)으로 나가 있었다”라고 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염노는 소금을 만드는 데 사역된 노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 무렵에 신라는 영역국가로 발돋움하면서도 전쟁포로인 염노로써 소금을 생산하는 방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의 제염법은 염분(鹽盆) 등에 바다물을 쪄서 농축시키는 방법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러한 제염법은 많은 재목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서 매우 고된 일이었다.

따라서 3세기 무렵 신라에 있어서는 전쟁포로 등의 노예계급이나 이에 준하는 처지의 신분층에서 소금 생산을 담당하였고, 생산된 소금은 신라 왕경의 염고(鹽庫) 등에 운반되어 실용에 충당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상(上)
「신라(新羅) 상대(上代) 수공업(手工業)과 장인(匠人)」(박남수, 『국사관논총(國史館論叢)』39, 1992 : 『신라수공업사(新羅手工業史)』, 신서원, 1996)
「우로전설(于老傳說)의 세계(世界)」(이기동, 『한국(韓國) 고대(古代)의 국가(國家)와 사회(社會)』, 역사학회, 1985)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