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전라남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가옥은 500여 년이나 된 옛 집터에 자리하고 있는 전통가옥이다. 처음으로 이곳에 정착한 이효상(李孝常)은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조카이며, 개국공신인 이천우(李天祐)의 증손이다. 또한 이 집은 20대가 지나도록 살고 있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양도공파(襄度公派)의 종가이기도 하다. 특히 임진왜란 시 영광 수성도별장(守城都別將)이었던 이응종(李應鍾)의 생가이며, 숙종 때 이상호(李相虎)의 지극한 효성을 기려 세운 효자정려각(孝子旌閭閣)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남쪽으로 원만하게 경사진 대지에 남북의 축을 따라 남향으로 건물을 배치하였다. 입구의 솟을대문과 중문은 동일 축선상에 정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3칸 솟을대문인 정문을 들어서면 동측에 사랑채가 놓여 있다. 사랑채의 서편에는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연못터만 있을 뿐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안채는 중문을 지나서 축에서 동쪽으로 약간 어긋나게 배치되었는데, 이는 안공간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배려이다. 안채의 동쪽에는 부속채가 있고 뒤편에는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경사지형에 축대를 쌓고 장독대를 두었다.
정확한 건립연대를 알 수 없는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집이다. 평면은 좌로부터 겹집형태로 된 벽장이 있는 머리방 1칸과 골방이 겹으로 있는 큰대청 2칸, 큰방 1칸, 부엌과 정지대청 1칸, 그리고 건너방 1칸으로 구성되었다. 전면 중앙부와 좌퇴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창호는 전체적으로 띠살 쌍여닫이창을 사용하였다. 두벌대의 장대석 기단 위에 잘 다듬은 방형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다. 2고주(高柱) 5량(樑)의 구조로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에 전후좌우에 퇴가 있는 형태이다. 평면은 윗대청 1칸, 아래대청 1칸, 방 2칸의 순서로 배치되었는데 2칸의 방을 하나로 터서 사용하고 있다. 대청 전후에는 단을 높이 하여 퇴를 두었으며 방의 뒷퇴도 단을 높이 하여 반침을 각 칸별로 두었다. 윗대청의 퇴에는 목판에 그림이 새겨진 4짝 미서기가 설치되었으며 중앙칸 방의 반침에는 불발기를 두었다. 대청과 방의 출입문에는 각각 띠살문과 卍자살문을 설치하였다. 상량문에 “을미년(乙未年)…”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895년(고종 32)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외벌대의 장대석쌓기의 기단 위에 원형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에 전퇴를 가진 초익공(初翼工)식의 맞배지붕이다. 외벌대의 장대석 기단에 막돌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으며 전퇴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측면에는 풍판을 설치하였다. 이 곳은 이태조의 조카인 이천우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이 외에 안채의 우측에 정면 칸 측면 칸의 초가로 된 호제집(노비들의 집)이 있어 양반과 노비들의 주거 형태를 비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