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고택은 지붕에 있는 망와(望瓦)에 양각된 ‘조선개국오백이십오년병진’이라는 명문(銘文)에 의하면 1916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 지고 있다.
뒷편에 있는 야산을 배경으로 외부로 개방된 바깥마당에 면해서 난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정면 6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으로 된 사랑채가 있다. 그리고 다시 사랑채 좌측편으로 돌아가면 안채의 안마당과 함께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된 一자형의 안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안채는 우물마루를 깔은 1간의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앞에 툇마루가 달린 2칸의 안방이 있고 이 방 사이에는 사분합 미닫이문을 달았다. 이어서 2간의 부엌을 드렸는데 우측으로 작은 광을 드렸고 상부는 다락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청의 좌측에는 1간의 건넌방을 드렸는데 앞에 있는 툇마루를 높여 아래는 온돌아궁이의 함실로 사용하고 위는 난간을 돌려서 작은 누(樓)의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안채 앞에 있는 사랑채는 뒤편에 작은 고방(庫房)이 딸린 1간의 대청과 2간의 사랑방을 드린 후 다시 이들 양편에 대칭적으로 1간씩의 온돌방을 드렸다.
따라서 대청공간보다는 방의 공간을 넓게 잡았고, 또 대청 앞에도 사분합 띠살문을 달아 마루방이 되도록 하였다. 구조는 자연석으로 쌓은 자연석 기단 위에 잘 깍은 네모뿔형 주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는데 기둥머리에는 간결한 양봉이 건물의 내외 방향으로 끼워져 있다.
지붕틀은 기둥 위에 잘 다듬은 퇴보와 대들보를 걸은 2고주 5량가구이며, 대들보 위에 소로(小累)를 끼워 장식을 한 제형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도록 하였다. 지붕은 안채와 사랑채 모두 홑처마 팔작지붕을 올렸다. 솟을삼문으로 된 대문과 사랑채, 안채 가 비교적 잘 남아 있는 가옥이다.
이 지역의 안채 평면이 대부분 ㄱ자형이 많은 것에 반해서 一자형으로 되어 있고 평면 구성에서 마루 공간 보다 방의 공간을 크게 잡았고 특히 지붕틀이 겹집 구조로 되어 있어서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