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종도리 장여에 있는 상량문에 의하면 1932년에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원래는 용화면 월전리에 있었던 정참봉의 집을 옮겨 지었다고 전하여 지고 있다.
건물의 전체 배치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一자형으로 된 평면에서 다시 꺾이어 정면 3칸, 측면 1칸을 더붙여 ㄱ자형을 이루고 있는 행랑채와 이 행랑채에 나 있는 소슬삼문형의 중문을 지나서 있는 안마당에 면해 있는 ㄱ자형의 안채가 전체적으로 튼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중앙 2칸의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ㄱ자형의 꺾이는 부분 2칸과 여기에 다시 2칸을 더 붙여 4칸의 큰 안방을 들였는데 이들 방 사이에는 사분합 미닫이문을 달아 3칸의 방으로 구획하였고 또 이 방 앞으로 1칸을 더 내어 사랑방을 대신할 수 있도록 전원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누(樓)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대청의 우측에는 1칸의 건넌방을 드렸는데 방 앞의 마루를 높여 아래는 온돌 아궁이의 함실로 쓰고 위에는 난간을 돌려 툇마루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구조는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네모뿔형 주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는데 기둥머리에는 간결한 양봉이 건물 내외 방향으로 끼워져 있다.
특히 창방으로 연결되어 있는 기둥사이에는 4개의 소로(小累)가 끼워져 주심도리 장여을 받쳐 주고 있는데, 이것은 이러한 구조적인 목적 이외에도 공공 건축물에서 건물의 외관을 아름답게 꾸미는 한 방법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수법이다.
지붕틀은 기둥 위에 잘 다듬은 굵은 대들보를 걸고 종보를 올린 1고주 5량가구이다. 종보 위에는 접시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고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안채 전면에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누(樓)를 드리고 또 주택 건축에서 보기 드물게 기둥 사이에 창방(昌枋)과 소로(小累)를 배치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종보 위에 있는 대공을 접시대공으로 처리하는 등 가구의 구성에 아주 정성을 많이 들인 전통 주택건축으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