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60년(현종 1)에 성내(城內)로 이건, 복원하였다. 1676년에 처음의 창건 장소로 이전하였고, 1754년에 현재의 위치로 다시 이전하였다.
1676년(숙종 2)에 다시 구교리로 이전하였다가 1754년(영조 30)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과 6칸의 명륜당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며,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층목조 팔작지붕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소장전적은 판본이 몇 권 있을 뿐이다.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