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시대에 사직의 안태를 도모하고자 행하던 도교의례.
내용
1110년(예종 5) 송나라에서 2명의 도사가 오고 복원궁(福源宮)이 건립됨에 따라 고려 도교의례가 중국의 성립도교(成立道敎)에 준하여 체계화되었는데, 이 도량도 그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도량이라는 이름 때문에 흔히 불교의례라고 잘못 여겨져왔다. 도교의 도량에는 이 밖에도 성변기양십일요소재도량(星變祈禳十一曜消災道場)·북제신병호국도량(北帝神兵護國道場) 등이 있었다.
영보도량은 복원궁·신격전(神格殿) 등의 도관이나 내전(內殿)·편전(便殿) 등에서 설행(設行)되었으며, 10월(孟冬)의 항례적 성격(恒例的性格)이 짙다.
설행목적은 한마디로 왕실의 기복(祈福)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천재지변이나 병혁(兵革) 등을 기양(祈禳)함으로써 사직의 안태(安泰)를 도모하는 데 있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영보도량 청사(靑詞)에 의하면 도사들을 모아 행하는 이 집회는 독자적인 형태를 지니고 제의적 성격만 있는 재초(齋醮)와 겸하여 설행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영보초(靈寶醮)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행해짐으로써 성격이 바뀌었다가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이능화, 이종은역, 보성문화사, 1977)
- 「고려도교사상(高麗道敎思想)의 연구」(양은용, 『원광대학교논문집』19,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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