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여(迎如)의 출신이나 이력에 관한 사항은 자세하지 않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그의 행적에 관한 일부 사항이 기술되어 있어 참고할 수 있다. 영여는 경덕왕 때 실제사(實際寺)에 머물며 수행하였다고 한다. 인품과 덕행이 모두 높아 왕이 영여를 맞아들여 공양을 하려고 사람을 시켜 보내 불렀다. 영여가 대궐에 들어가 재(齎)를 마치고 돌아가려 하자, 왕은 사자를 보내 그를 절까지 모시도록 하였다. 그런데 영여는 절문에 들어서자 홀연히 사라져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자가 돌아와 이 사실을 왕에게 아뢰니, 왕은 이상하게 여기고 영여를 국사(國師)로 추봉하였다. 이후로 영여는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그가 머문 절을 국사가 있었던 방이라 하여 ‘국사방(國師房)’이라고 불렀다. 현재 경주시의 남산 동쪽에는 국사곡(國師谷)이 있다. 절터로 추정되는 이곳에는 폐탑과 초석 등이 남아 있어 영여가 주석하였던 국사방일 가능성이 있다.
한편, 영여가 피은(避隱)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수행이나 포교를 위해 국가 권력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