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벽화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수덕사 대웅전(국보, 1962년 지정)에 있던 고려시대의 벽화.

내용

1937년부터 실시된 수덕사 대웅전 해체 수리 공사 중 발견된 것이다. 실물은 6·25동란으로 인하여 파괴되고 현재는 당시 임천(林泉)이 그린 모사도(模寫圖)의 일부만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벽화는 대웅전 내부 네 벽의 고주중방(高柱中枋) 윗벽과 창방(昌枋) 위의 포벽(包壁) 등의 공간에 그려진 것으로 모두 40점이 모사되었다.

이들은 벽면의 중앙에 그려진 예배도 등이 아니고 건물의 결구 사이에 생긴 작은 공간을 이용한 장엄용 벽화들이다. 주로 소불(小佛)·주악비천(奏樂飛天)·공양화(供養花)·나한(羅漢)·극락조(極樂鳥) 등이 내용을 이루고 있다.

황토칠로 마감한 벽면에 그려진 벽화는 박락이 심하여 완전히 알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필치나 양식 등은 대체로 알 수 있다. 이 중 주악비천도는 장구를 치거나 피리를 불며 날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풍만한 얼굴, 이목구비와 손의 섬세한 묘사, 유연한 자태 그리고 굴곡이 심한 곡선으로 묘사된 펄럭이는 천의(天衣)의 모습 등이 우아하면서도 경쾌하여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동서 벽면의 고주중방 윗벽에 그려진 공양화 그림은 도자기로 생각되는 수반에 백련(白蓮)·홍련(紅蓮)을 비롯한 여러 가지 야생초를 풍성히 꽂은 모습이다. 활짝 핀 꽃송이와 풀들이 반원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모두 사실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채색은 모사 당시에는 많이 퇴색되어 원래의 상태는 거의 알 수 없다.

이 벽화들은 수리 시 발견된 묵서명 ‘至大元年戊申四月十七日立柱(지대원년무신4월17일입주)’에 의하여 1308년(층렬왕 34)에 그려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석사 조사당 벽화 외에는 고려시대의 벽화가 현존하지 않는 현재로서는 모사도이긴 하지만 당시 사원 벽화의 양상을 단편적으로나마 알려 준다. 섬세한 구성과 정교한 묘사, 능란한 필치 등 고려시대 사원 벽화의 우수한 양식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 - 『한국(韓國)의 미(美) 7 -고려불화(高麗佛畵)-』(이동주 감수, 중앙일보사, 1981)

  • - 「한국불교벽화(韓國佛敎壁畵)의 연구(硏究) -고려시대(高麗時代)를 중심으로-」(박도화, 『불교미술』6, 동국대학교박물관, 1981)

  • - 「수덕사대웅전(修德寺大雄殿)의 벽화(壁畵)」(임천, 『미술자료』2, 국립중앙박물관, 1960)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