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그림의 전체 크기는 세로 292㎝, 가로 206㎝이다.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을 전거로, 보타락가산에 머무는 관음보살과 그를 방문한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도상화하였다. 화면 중앙에는 정면관(正面觀)을 취한 관음보살이 주1과 흰색 윤곽선의 주2을 갖추고 풀방석 위에 주3 하고 있다. 단정한 이목구비의 관음보살은 주4이 새겨진 화려한 보관(寶冠)과 흉식(胸飾)을 갖추고, 붉은색 군의(裙衣) 위에 녹색 천의(天衣)를 입었다. 보관에는 화염 장식이 있고, 또 수많은 구슬로 장식되어 있다. 구슬 장식은 어깨까지 내려오며, 천의를 따라 발 아래까지 영락(瓔珞) 장식이 길게 늘어져 있다.
관음보살 아래에는 청문(聽聞)하는 선재동자와 여의주를 받쳐 든 용왕과 용녀(龍女) 인물상이 배치되었다. 선재동자는 쌍계형(雙髻形) 머리를 하고 화면 하단 왼쪽에서 관음보살을 향해 합장하고 있다. 어깨에는 운견(雲肩), 목 부근에는 천의를 둘렀으며, 하반신에는 무릎까지 오는 녹색의 군의(裙衣)를 입었다.
선재동자와 대칭되는 쪽에는 독특한 머리 장식을 하고 마치 천부(天部)의 제석천이나 범천과 같은 복식을 갖춘 용녀와 홀을 든 용왕이 있다. 용녀는 도교의 영향 내지, 다라니를 계시하기 위해 용궁에 간 관음에게 보주를 바쳤다는 밀교계 경전의 내용에서 도상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고려 수월관음도 가운데 일본 다이토쿠지본[大德寺本]에서 용왕과 함께 보주를 헌공하는 장면으로 도상화되기는 하였으나, 조선 수월관음도에서 용녀는 드물게 나타나는 도상이다. 조선 후기 관음보살도에서 용녀가 선재동자와 대칭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운흥사 「관음보살도」와 내소사 「백의관음보살 벽화」가 거의 유일하다.
관음보살이 앉아 있는 바위를 따라 가면, 언덕의 끝 지점에 세 발 달린 그릇 받침 위에 정병이 올려져 있고, 그 안에 버들가지가 꽂혀 있다. 버들가지 위쪽으로는 새가 날고 있다. 정병과 버들가지는 어려움에 처한 중생을 구제하는 맑은 물과 치유의 도구를 상징한다. 새와 대나무는 낙산 관음굴(洛山 觀音窟) 영험(靈驗)과 관련 있는 도상이다.
관음보살의 균형 있는 인체 표현 및 화려한 채색과 문양은 관음의 정토를 효과적으로 가시화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고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이며, 밝은 진홍색과 녹색 등 화사한 색조 구사와 장식적 경향에서 18세기 초기의 불화 양식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관음보살도에는 거의 표현되지 않는 용왕과 용녀 도상이 추가된 점은 이 불화의 특징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의겸이 제작한 관음보살도는 운흥사 「관음보살도」 외에 두 점이 더 현전한다. 의겸 관음보살도의 다양한 도상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