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운흥사 관음보살도 ( )

고성 운흥사 관음보살도
고성 운흥사 관음보살도
회화
작품
국가유산
1730년, 화승 의겸, 행종, 채인이 그린 관음보살도.
작품/서화
창작 연도
1730년
작가
의겸, 행종, 채인
소장처
쌍계사 성보박물관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고성 운흥사 관음보살도(固城 雲興寺 觀音菩薩圖)
분류
유물/불교회화/탱화/불도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10년 12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남 고성군 하이면 와룡2길 248-28, 운흥사 (와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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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고성 운흥사 「관음보살도」는 1730년 화승 의겸, 행종, 채인이 그린 관음보살도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한 작품으로, 그림의 전체 크기는 세로 292㎝, 가로 206㎝이다. 조선시대 관음보살도에는 거의 표현되지 않는 용왕과 용녀 도상이 추가되어 눈길을 끈다. 2010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의
1730년, 화승 의겸, 행종, 채인이 그린 관음보살도.
제작 배경

의겸(義謙)을 비롯하여 행종(幸宗), 채인(採仁) 등 세 명의 화승이 1730(영조 6)년에 조성하였다. 1730년에는 「관음보살도」 외에도, 운흥사에서 「삼세불회도」, 「삼장보살도」, 「감로도」, 「영산회괘불도」와 관음보살좌상이 같은 불사로 제작되었다. 이 큰 불사를 이끌었던 의겸은 운흥사에서 그의 집단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며, 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형태 및 특징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그림의 전체 크기는 세로 292㎝, 가로 206㎝이다.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을 전거로, 보타락가산에 머무는 관음보살과 그를 방문한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도상화하였다. 화면 중앙에는 정면관(正面觀)을 취한 관음보살이 주1과 흰색 윤곽선의 주2을 갖추고 풀방석 위에 주3 하고 있다. 단정한 이목구비의 관음보살은 주4이 새겨진 화려한 보관(寶冠)과 흉식(胸飾)을 갖추고, 붉은색 군의(裙衣) 위에 녹색 천의(天衣)를 입었다. 보관에는 화염 장식이 있고, 또 수많은 구슬로 장식되어 있다. 구슬 장식은 어깨까지 내려오며, 천의를 따라 발 아래까지 영락(瓔珞) 장식이 길게 늘어져 있다.

관음보살 아래에는 청문(聽聞)하는 선재동자와 여의주를 받쳐 든 용왕과 용녀(龍女) 인물상이 배치되었다. 선재동자는 쌍계형(雙髻形) 머리를 하고 화면 하단 왼쪽에서 관음보살을 향해 합장하고 있다. 어깨에는 운견(雲肩), 목 부근에는 천의를 둘렀으며, 하반신에는 무릎까지 오는 녹색의 군의(裙衣)를 입었다.

선재동자와 대칭되는 쪽에는 독특한 머리 장식을 하고 마치 천부(天部)의 제석천이나 범천과 같은 복식을 갖춘 용녀와 홀을 든 용왕이 있다. 용녀는 도교의 영향 내지, 다라니를 계시하기 위해 용궁에 간 관음에게 보주를 바쳤다는 밀교계 경전의 내용에서 도상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고려 수월관음도 가운데 일본 다이토쿠지본[大德寺本]에서 용왕과 함께 보주를 헌공하는 장면으로 도상화되기는 하였으나, 조선 수월관음도에서 용녀는 드물게 나타나는 도상이다. 조선 후기 관음보살도에서 용녀가 선재동자와 대칭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운흥사 「관음보살도」와 내소사 「백의관음보살 벽화」가 거의 유일하다.

관음보살이 앉아 있는 바위를 따라 가면, 언덕의 끝 지점에 세 발 달린 그릇 받침 위에 정병이 올려져 있고, 그 안에 버들가지가 꽂혀 있다. 버들가지 위쪽으로는 새가 날고 있다. 정병과 버들가지는 어려움에 처한 중생을 구제하는 맑은 물과 치유의 도구를 상징한다. 새와 대나무는 낙산 관음굴(洛山 觀音窟) 영험(靈驗)과 관련 있는 도상이다.

의의 및 평가

관음보살의 균형 있는 인체 표현 및 화려한 채색과 문양은 관음의 정토를 효과적으로 가시화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고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이며, 밝은 진홍색과 녹색 등 화사한 색조 구사와 장식적 경향에서 18세기 초기의 불화 양식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관음보살도에는 거의 표현되지 않는 용왕과 용녀 도상이 추가된 점은 이 불화의 특징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의겸이 제작한 관음보살도는 운흥사 「관음보살도」 외에 두 점이 더 현전한다. 의겸 관음보살도의 다양한 도상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원전

『화염경(華嚴經)』

단행본

『한국의 불화 25: 쌍계사 본말사편(상)』(성보문화재연구원, 2002)

논문

김영희, 「1730년 의겸 작 내원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 연구: 조선후기 백의관음신앙의 측면에서」(『불교미술사학』 29, 불교미술사학회, 2020)
유경희, 「여수 흥국사 의겸작 관음보살도 연구」(『불교미술사학』 8, 불교미술사학회, 2009)
유지원, 「조선후기 화사 의겸의 불화 연구」(동국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9)
김미경, 「조선 17~18세기 관음보살도 연구」(『역사와 경제』 61, 부산경남사학회, 2006)
이지영, 「조선시대 관음보살도 연구」(동국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4)
안귀숙, 「조선후기 불화승의 계보와 의겸비구에 관한 연구(하)」(『미술사연구』 9, 미술사연구회, 1995)
안귀숙, 「조선후기 불화승의 계보와 의겸비구에 관한 연구(상)」(『미술사연구』 8, 미술사연구회, 1994)
이은희, 「운흥사와 화사 의겸에 관한 고찰」(『문화재』 24, 국립문화재연구소, 1994)
김승희, 「흥국사의 불교회화」(『미술사학지』 1, 한국고고미술연구소, 1993)
주석
주1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 탱화 따위에서 머리 언저리에 동그라미를 그려 나타낸다. 우리말샘

주2

부처와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 우리말샘

주3

결가부좌에서 한쪽 다리를 풀어 대좌 밑으로 내린 자세. 우리말샘

주4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여러 모습으로 변화하는 일. 또는 그 불신(佛身). 좁은 의미에서는 부처의 상호(相好)를 갖추지 않고 범부, 범천, 제석, 마왕 따위의 모습을 취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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