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야서(掌冶署)의 후신이다. 고려관제 정비기인 문종 때 설치된 장야서에는 은장(銀匠)·화장(和匠)·자동장(紫銅匠)·적동장(赤銅匠)·경장(鏡匠)·금박장(金薄匠)·생철장(生鐵匠) 등의 공장(工匠)이 소속되어 있어 철공과 야금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다.
따라서 그 기능에 있어 중상서(中尙署 : 뒤의 供造署)·잡직서(雜織署)·도염서(都染署)와 더불어 소부감(小府監)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런데 고려 후기인 1308년(충렬왕 34) 원나라의 간섭에 따른 관제개혁으로 장야서가 폐지되고 영조국으로 개칭되었다.
이는 종래 궁실업무를 관장하는 시(寺)·감(監) 예하의 직능별 속사(屬司)를 편성하였던 당나라의 체제를 탈피하여 제관부를 병렬적으로 편제한 원나라의 체제로 전환하였음을 의미한다. 즉, 이전의 장야서가 7품관서인 반면, 개정된 영조국은 종5품관서로서 강화된 일면을 가진다.
구체적인 직제는 사(使, 종5품)·부사(副使, 종6품)·직장(直長, 종7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휘하의 이속으로는 사(史, 4인)·기관(記官, 2인)·산사(算士, 1인)를 두어 실무를 맡게 하였다.
그러나 1310년(충선왕 2)에 영조국은 폐지되고 다시 장야서로 환원되었으며, 고려 말 조선건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제도개편의 일환으로 단행된 1391년(공양왕 3)의 관제개혁 때 장야서 역시 공조에 병합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공조에 분속된 제3품아문인 선공감(繕工監)에 소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