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영조는 숙종의 넷째 아들로 1694(숙종 20)년 9월 13일에 숙빈최씨(淑嬪崔氏)의 몸에서 태어나 1등태봉인 이곳에 안태(安胎)되었는데 그가 왕위에 즉위하자 왕실의 예에 따라 1729(영조 5)년에 태실을 개봉축(改封築)하여 석물(石物)로 가봉(加封)하였다.
태실의 형태는 중앙에 2단으로 된 사각의 대석 위에 구형(球形)의 중동석(中童石)과 팔각의 옥개석을 얹어 태실을 만들고 주위에 팔각의 전석(磚石)을 깔고, 각 모서리에는 우주석을, 8면의 중앙에는 동자석을 세운 뒤 육각의 장대석을 가로얹은 호석난간(護石欄干)을 둘러 가봉하였다.
태실 앞에는 거북돌 위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를 얹은 태실비가 남아 있는데 앞면에는 “주상전하태실(主上殿下胎室)”이라고 쓴 비명을 새기고 뒷면에는 “옹정 7년 10월 14일 건(雍正七年十月十四日建)”이라 하여 1729년에 태실을 석물로 다시 치장하고 태실비를 세웠음을 밝히고 있다.
이 영조태실에는 나라에서 8명의 수호군을 두어 관리하였으나 1928년에 일제가 관리가 어렵다는 구실로 태항아리만 꺼내어 창경원으로 옮기면서 크게 훼손되자 그후 태실자리에 민묘가 들어섰고 태실비는 마을사람들이 마을로 옮겨 세웠는데 1982년에 석물들이 발견되면서 원위치의 동북쪽 산중턱에 복원하였다.
영조태실의 조성경위와 제반 사항을 소상하게 기록한 『영조대왕태실석난간조배의궤』가 남아 있어 태실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영조대왕태실석난간조배의궤』는 199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