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산덕리태실은 1928년에 일제가 전국의 태실을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전국의 태실에서 태항아리를 꺼내어 창경원 경내에 이봉할 당시에 봉분이 파헤쳐지고 태항아리와 지석(誌石) 등의 부장품이 모두 반출되었다.
그후 석함(石函)과 개석(蓋石), 태실비(胎室碑)만이 주변에 방치되어 있다가 1994년에 청주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석함을 원래대로 봉안하고 봉분을 만들어 복원 정비하였다. 석함과 개석은 석회석으로 조성되었다.
석함은 높이가 76㎝, 지름이 118㎝로 내 귀가 달린 원통형인데 바닥에는 지름 9.5㎝의 배수구가 관통되어 있다. 개석은 높이가 63㎝, 지름이 118㎝로 네 귀가 달린 반구형(半球形)이다.
태실비는 전체높이 138㎝로 석회석으로 조성되었는데 비문이 인위적인 손상을 입어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으나 “만력(萬曆) 16년”에 만든 “아기씨의 태실(阿只氏胎室)”로서 “만력 17년 2월 25일”에 태실비를 세운 것으로 판독되었다.
만력 16년은 1588년에 해당되므로 조선 선조(宣祖) 21년(1588)에 인목왕후의 몸에서 태어난 인성군(仁城君)의 태를 봉안한 태실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