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는 그 구분이 엄밀하지 않고 개인의 육체 및 정신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독립된 인격적 실재로서 감각에 의한 인식을 초월해 있는 영원한 존재를 의미하고 있다.
원시인들 가운데는 어떤 개성이 없는 보편적인 생명의 본질로 여겨지는 영질(靈質)의 관념이나 비인격적인 영위(靈位)를 생각하기도 하나, 개체적·인격적 존재인 인간에 부속되어 있는 초감각적 본질관념인 영혼과 구별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서양에서 악마를 포함한 영귀(靈鬼) 혹은 데몬(demon)에 대한 신앙도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딸려 붙은 원체(原體)가 없는 존재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영혼관념과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원적으로 기식(氣息 : 호흡의 기운)을 의미하는 정령(精靈, spirit)의 관념은 영혼과 똑같이 원체로부터 독립해 활동하는 일종의 자유영(Freienseele)이지만, 아직도 원체와의 관계를 완전히 망각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넓은 의미의 영혼관념에 포함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한국에는 넓은 의미의 영혼에 해당하는 말로 넋·혼·영·혼령·혼백 등이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나 크게 나누면 사령(死靈)과 생령(生靈)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이와 같은 구분은 대부분의 원시종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령은 사람이 죽은 뒤에 저승으로 가는 영을 말하고, 생령은 살아 있는 사람의 몸 속에 깃들여 있는 영혼을 말한다.
사령의 존재를 입증하는 일반 무속의 제의는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집가심·자리걷이·진오기·오구굿·씻김굿·수왕굿·망무기·해원(解寃)굿·조상굿 등에서 망인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생령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으로는 한국의 민간신앙에서 잠자는 동안 영혼이 육신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것이 꿈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는 것, 자는 사람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놓거나 천이나 종이로 얼굴을 덮어놓으면 잠든 사이에 영혼이 떠돌아다니다가 육신으로 돌아왔을 때 다른 사람의 육신으로 알고 다른 데로 가버리므로 그 사람이 죽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 중병이나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의식이 흐려지는 것은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나갔다 들어왔다 하기 때문이라고 믿는 것 등에서 알 수 있다.
사령은 다시 조상 혹은 조령(祖靈)과 원귀(寃鬼)로 구분된다. 전자는 이 세상에서 순조롭게 살다가 저승으로 잘 들어간 영혼으로서 선령(善靈)이 된다. 반면에 후자는 생전의 원한이 남아 저승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살아 있는 인간을 괴롭히는 악령을 말한다.
전자의 선령을 대표하는 것은 ‘대신’·‘말명’을 들 수 있고, 후자의 악령을 대표하는 것은 ‘왕신’·‘몽달귀신’·‘객귀(客鬼)’·‘영산’·‘수비’·‘수부’ 등을 들 수 있다.
후자의 악령들은 요절하거나 횡사 또는 객사한 영혼이 원한이 풀리지 않아 저승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떠돌아다니며 살아 있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영이다.
일반적으로 조상의 선령은 3년간의 탈상과 더불어 저승으로 들어가는 것이 상례인데, 원령은 3년이 지나도 저승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원한이 풀릴 때까지 살아 있는 인간을 괴롭힌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악령의 원한을 풀어서 저승으로 천도하는 무속이 많이 발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진오기’·‘오구굿’·‘씻김굿’과 같은 것을 들 수가 있다.
이러한 영혼의 이중적 성격은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특색이 드러난다. 조상의 선령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영혼이 살아 있는 인간 상호간의 인륜적 관계를 강화하는 측면으로 작용하지만, 후자의 악령과의 관계에서는 영혼이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측면으로 작용한다.
선령이 인간의 인륜적 관계를 강화해주는 것은 인간사회에서 도덕적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조상이 도와주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벌을 준다는 권선징악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다. ‘조상굿’·‘말명굿’ 등에서 잘 드러나는 바와 같이 조상신이 인간을 수호해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원귀나 악령인 경우에는 인간을 병으로 괴롭히거나 재앙을 가져다주어 인간으로부터 희생을 받거나 굿을 받아먹거나 한다. 예를 들면, ‘왕신’·‘삼태귀신’·‘몽달귀신’ 등을 들 수 있다.
왕신은 처녀가 시집을 가지 못하고 죽어서 원귀가 된 경우이다. 왕신이라는 말은 가장 두려운 신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대개 집안의 작은 상자나 단지 같은 데에 넣어 봉안하고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낱낱이 고해야 하고 음식과 재물이 들고 나는 것도 낱낱이 바치고 고하여야 한다.
삼태귀신은 혼인을 하지 못하고 총각으로 죽은 귀신을 말하는데, 왕신과 같이 따로 봉안되는 예는 없지만 원귀로서 인간을 해치는 두려운 귀신이다. 몽달귀신은 삼태귀신과 같이 총각으로 죽은 귀신을 말한다. 이러한 악령들의 공통적인 성격은 현세에서 한을 품고 죽은 영혼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현세에서 평생을 유복하게 오래 한없이 살다가 죽은 사람은 죽은 뒤에도 영혼이 선해지고, 반대로 현세에서 만족하지 못한 생을 살다가 죽은 영혼은 죽은 뒤에도 인간을 괴롭히는 악령적 성격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영혼이 모두 이와 같이 선령과 악령으로 둘로 갈라져서 분계선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어떤 영혼은 비록 인간을 수호해주는 선령이었다가도 때로 악령으로 변하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대개 선령이라도 인간의 대우가 소홀하게 되면 악령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많다.
고대 헤브루(Hebrew)에서 영혼에 해당하는 관념은 네프쉬(nephes)라고 불린다. 이것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생명의 근원으로 동물에게도 있고 혈액 가운데에도 있다.
이러한 요소가 인간에게는 의지나 도덕적 행위의 주체가 되고 있으며, 죽은 뒤에는 지하의 세계에 들어가 생전과 똑같은 생활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헤브루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있는 기독교에서는 이미 죽은 이후에도 존속하는 영혼의 신앙이 믿어지고 있는데, 다만 이 때에는 육체와 분리된 것이 아니고 육체와 일체화된 인격을 의미하고 있었다.
사도(使徒) 바울(Paul)만 하더라도 성령과의 합일을 설교했지만 개별적인 영혼의 존속에 대하여는 별로 말하지 않았다. 중세에 이르러 비로소 육체와 분리된 영혼관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이 때도 역시 육체의 부활이라는 관념은 없어지지 않았다.
근대에 들어와서 많은 신앙부흥운동이 일어나 종교경험의 근원으로서 영혼의 활동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게 되었다. 현대에는 영혼의 불멸성을 믿는 경향이 확고하게 되었다. 힌두교의 모체인 아리안인은 서기전 12세기 무렵 인도에 침입해 들어갔을 때 이미 육체와 독립된 영혼을 믿고 죽음 이후의 존속에 대해서도 믿고 있었다.
서기 전 7세기 무렵에는 이른바 업(業, karman)의 사상이 발달해 무한한 생사를 반복하는 윤회를 믿고 있었다. 그 뒤 베단타철학에서 개아의 본질로서 아트만(atman)이 우주의 실재(brahman)와 하나라는 입장이 생겨나 영혼의 인격적 개별성이 부정되는 데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아트만이 브라만과 합일해 윤회로부터 해탈한다 하더라도 그 개별적 인격성이 존속한다고 믿어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인도의 전통과는 달리 무아설(無我說)을 바탕으로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인간을 포함하는 유정(有情)이 삼계(三界 : 欲界·色界·無色界)·오취(五趣 : 지옥·아귀·축생·인간·天)·사생(四生 : 胎生·卵生·濕生·化生)을 윤회전생한다고 하더라도 그 주체로서의 영혼이 존재한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인간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오온(五蘊)이 잠깐 화합한 데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사자공양(死者供養)이나 정토신앙 같은 데에서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례가 생겨났다. 중국을 거쳐 우리 나라에 들어온 불교는 민속종교와 습합해 일반에게 영혼신앙의 내용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었다.
한국인의 영혼관을 기독교나 불교와 비교한다면 몇 가지 점에서 특색이 드러난다. 첫째,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영혼이 유일신인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다고 믿지 않는다.
물론, 저승에서 인간의 개별적 영혼을 지배하는 초능력자가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는 영혼을 지배하는 자이기는 해도 영혼을 창조하는 자는 아니다.
둘째, 부활에 대하여 믿고 있지만 성령과의 합일과 같은 지복(至福)의 상태를 상정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의 도덕적인 생활의 정도에 따라 저승에서도 복을 누릴 것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저승에서도 영혼과 영체(靈體)라고 할 수 있는 육체가 결합된 생명이 존속할 것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는 공통적인 면이 있다.
셋째, 힌두교나 불교에서처럼 영혼의 인격적 개별성을 부정하는 사상과는 현저하게 다른 영혼관을 한국인들이 지배적으로 가지고 있는 듯하다. 힌두교나 불교와 같은 범신론적 태도와 다른 영혼의 개별적 인격성이 강한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